26.02.25

배려의 순수성

by 고냥이

나는 항상 배려를 하면서도 나를 의심한다. 내가 정말로 배려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건지. 그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전공의 선생님은 말했다.

“그 의심은 결국 생각에서 시작된 거예요.”

그 말은 이상하게도 틀리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하길 바랐고, 나를 착한 사람으로 봐주길 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단순한 일인데, 나는 그런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배려란 반드시 순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기대도, 어떤 욕심도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만 비로소 ‘진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동에서도 참았다. 힘든 이야기를 반복하는 할머니의 말을 들어주었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에게도 웃었다. 그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든, 나는 늘 같은 생각을 되뇌었다.

“나는 저 사람들보다 덜 아프니까.”

힘들어하는 연이를 돕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 문제이고, 누군가를 돕는 일은 멈추면 안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말했을 때, 전공의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한다면, 그건 꼭 해야 하는 배려가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배려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선생님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갓난아기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도와주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그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커서도 계속 밥을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준다면 그건 어떤 걸까요?”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해온 배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돕고 있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그 사람의 자립할 기회를 빼앗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밖에서 마주해야 할 문제들을 나는 그저 대신 견뎌주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떠오른 말이 있었다.

이기적인 배려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던 것은, 순수한 배려라기보다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한 방식의 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선택하지 못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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