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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Jul 29. 2022

바래다주미.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바래다주미.






야근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탄 지하철. 코로나로 인해 영업시간이 밤 11시까지로 제한되는 거리두기 방침이 이어지던 때였다. 현재시간 10시 45분. 귀가하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탄 지하철은 알코올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와 코를 찔러왔다. 사람 많은 1호선 열차 안. 시끌벅적한 에너지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파이팅 넘치네. 나도 저랬으려나?'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던 한 무리가 있었다. 몸을 못 가누는 두 여학생과 그런 두 여학생의 가방을 크로스로 맨 한 남학생. 제대로 걷진 못하지만 연신 쫑알쫑알하는 아이들을 챙기고 있는 저 녀석은 마치 나의 20대 시절, 친구들의 안전귀가를 책임져주던 '바래다주미'인 듯했다. ……


"누가 이렇게 치마를 짧은 걸 입어서! 술 먹고 감당도 못할 길이를! 다리 꼬지 마. 다 보이잖아."

"안 보여~ 괜찮아. 속바지 입었어어"


"아! 나 핸드폰 없다아! 가방도 없다아!"

"여기 있다. 여기 있어. 다 내가 챙겼다. 걱정 말고 조용히 있어. 사람 많아. 조용히 해"


…… 소지품을 잃어버리지 않게 챙겨주고, 옷이 흐트러지지 않게 잘 여며주고. 그러면서도 연신 쫑알쫑알 늘어지는 말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는 인내심이었다.…… 이리 쿵, 저리 쿵. 그러면서도 끊이지 않는 웃음꽃.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고 주저앉아도 잔뜩 신이 나 보이는 두 취객과 걱정 가득한 한 바래다주미의 모습에 나는 자꾸 시선이 갔다. 



(중략)



한 살, 두 살. 나이가 더 들어서도 바래다주미들의 노고는 끝나지 않았다. 버스 막차가 택시로, 택시가 술 안 먹은 녀석의 자차로, 자차가 대리기사님으로 그 몸집만 바뀌었을 뿐 바래다주미의 귀가 서비스는 지금까지도 한 번씩 이어지고 있다. 잘 들어갔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보단 자신이 수고스러운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말하는 이들. 눈에 훤히 보이는 고생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주위를 챙기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 ……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흘려보내지 말고 탈 없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음에 감사를 전하자.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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