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14살.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도 아침마다 웃음 가득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맞은편 아파트에 살던 나의 등굣길 메이트였다. 지금처럼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거나 채팅을 나누지 못했던 당시의 우리는 아침 6시 50분이라는 약속시간에 맞춰 나오거나 늦으면 늦는 대로 마냥 서로를 기다리곤 했다.
…… 집 앞 횡단보도부터 4개의 신호를 건너면 도착할 수 있던 학교는 10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제 막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한 신도시에 이사 온 아이들과 오래전부터 동네에 있던 단 하나의 중학교. 이 근방 모든 중학생들이 모이던 유일한 곳이 바로 우리 학교였다. ……
"저기 맞은편에 남자 하나 서 있거든? 나 나왔을 때부터 저기 저 자세로 서서 계속 바닥만 보고 있는 데 뭔가 이상해."
…… 뭔지 모를 싸한 느낌에 목소리가 절로 낮춰졌다. 매일 다니던 등굣길을 포기하고 아파트 사이에 난 쪽 길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줄곧 같은 자세로 서 있던 남자가 느닷없이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 저쪽에서 우리 따라오는데?"
"아 씨 뭐야. 왜 저래? 뛸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떡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채웠다. 횡단보도 신호에 다시 걸음을 멈추니 맞은편 남자도 제자리에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난데없이 일이 벌어졌다.
(중략)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손발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팔짱 낀 서로의 손을 꽉 붙잡으며 의지했다. 초록불 신호가 들어옴과 동시에 '빠르게 걷자'를 읊조리며 움직이는 우리를 따라 바지를 추켜 올리고 따라 걷던 바바리맨. 얼마 걷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횡단보도와 마주하게 됐고 그 잠깐 사이에도 남자는 다시 바지를 내린 채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
"이게 무슨 일이야"
…… 그렇게 발 없는 우리의 이야기는 친구들 사이를 지나 다른 교실로, 또 돌고 돌아 교무실로 흘러갔다. 선생님들은 동네에 단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 등굣길에 나타난 바바리맨에 긴장하며 경찰서에 연락을 했다. 다행히 그날 이후 바바리맨은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았다. 적막한 아침 거리를 욕으로 가득 채워본 그날의 경험.…… 경험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