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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Aug 05. 2022

농사 싫어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농사 싫어.






집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던 나의 시골집은 아주 어릴 적엔 소를 키우며 젖을 짜는 '백운농장'으로 불렸고 초등학생 때는 닭장에 닭과 오리가 가득했던 곳으로 기억된다. 가마솥이 올려진 화구엔 늘 밥과 짚이 들어간 소죽이 끓여지고 있었고 남은 야채나 과일 껍질은 닭장에 흩뿌려지며 새로운 먹이가 됐다. ……


길어지는 모내기에 더위 먹는다며 나무 그늘에 있으라 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파라솔을 편 경운기 뒤에 앉아 있거나 논두렁 가상에 앉아 개구리알이나 올챙이를 관찰하곤 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고추밭 사이에 들어가 고추를 따거나 커다래진 옥수수를 꺾는 일, 들어서자마자 땀이 줄줄 흐르는 비닐하우스 안의 토마토 수확까지 도울 수 있는 일은 다 따라다니며 손을 보탰다.…… 


밭엔 다양한 작물이 심어졌다. 김장을 위해 배추, 무, 열무, 파, 쪽파, 고추를 심는 건 당연했고 옥수수와 오이, 호박, 토마토, 고구마, 감자 등은 실한 녀석들을 골라내 할머니의 작은 좌판에서 판매했다. ……아침마다 맛있게 익어가는 옥수수 냄새가 시골집 마당을 채웠다. 


"나도 이거 긴 거 먹고 싶은데"

"이런 게 더 맛있는 거야"


더 맛있는 시골 농작물을 먹으며 자란 나의 학창 시절.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도 나는 농사철이면 주말마다 시골 밭에 올라가 농사일을 했다. 



(중략)



밭에만 다녀오면 두 모녀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서로의 등에 파스를 붙여주고 있었다. 점점 농사일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 농사 싫어. 이제 밭에 안 갈 거야. 나도 긴 거, 예쁜 거로 다 사 먹을 거야."

"너 안 가면 할머니 혼자 다 해야 하는데 왜 안 한다 그래"

"아빠가 해야지, 아빠도 안 가는 밭을 무슨 할머니 혼자 해. 엄마도 나도 힘들어"


……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밭에 가지 않았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  '밭에 고구마랑 토마토랑 옥수수만 좀 심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전의 고생스러움을 잊어버렸는지 그런 생각을 떠올린 내 자신이 너무 놀라 그대로 멈춰 섰다.


'나 지금 옥수수 심을 생각한 거야? 농사짓는 생각을 한다고?'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날의 시골집도, 드넓은 밭의 풍경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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