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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Jul 08. 2022

건강만 하셔라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건강만 하셔라






'이제 성인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해.'


아무도 책임져줄 수 없는 실전 인생의 시작이라며, 세상이 주는 겁으로부터 내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스무살. 

마음은 아직 고등학생인데 지갑 한편엔 교복 입은 증명사진이 들어간 주민등록증이 꽂혀 있었다. …… 

20살 시작과 동시에 용돈을 받지 않았고 가지고 있던 엄마카드, 일명 엄카를 반납했다. 학비든 용돈이든 간에 모든 경제적인 것을 스스로 챙겨야 했다. 학자금 대출을 통해 학비를 냈고 한 두 달가량의 방학기간을 이용해 주말마다 마트에서 단기 판촉 알바를 했다. 보통의 알바보다는 페이가 제법 센 편이었기에 반짝 알바를 하면 학기 중에는 알바를 하지 않아도 내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용돈은 벌 수 있었다. 



(중략)



"출출하니까 과자 하나 줘봐. 자른 거 말고 그거 안 깐 거, 큰 거 하나 줘봐"

"안 자르면 시식이 모자라서 안돼요. 다른 분들도 맛보시고 사셔야죠"

"어차피 자르고 여기 놓나, 안 자르고 놓나 내가 다 먹을 건데 괜히 부스러기만 만드니까 그냥 하나 줘"


만족할 만큼의 과자를 먹을 때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식대 앞에서 마냥 과자를 집어먹던 노인들의 모습. 하나를 주고 나면 또 하나를 요구하는 고집. 하루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요일도, 금요일도,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다시 그 다음 주에도 어김없이 등장해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시음용 믹스커피 한 잔과 함께 과자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며 정말 진상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어김없이 매일, 같은 시간에 마트 문을 열던 노인들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무슨 말을 내게 건넬지, 오늘은 어디를 다녀왔는지, 행동 패턴이 눈에 들어올 때쯤 아침마다 과자코너를 돌며 말을 걸던 말끔한 차림새의 할머니 한 분이 지난주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차림은 말끔했는데 알고 보니 진상 무리 중 하나였다고 토로했던 인물이지만 지난 몇 주간 계속 보이던 사람이 안보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중략)



"어르신, 나 이제 안 와. 알바 끝났어. 건강하게 계속 마트 오셔서 돌아다니고 글자 읽고 하면서 운동하셔. 건강만 하셔. 그게 최고야"

"왜 안 와, 그럼 이제 과자 못 얻어먹어?"

"나도 학교 가야지. 과자는 아마 계속 있을 거야. 걱정 말고 오셔서 열심히 드셔~"


……

내 앞가림을 해야 하기에 다시 시작한 판촉 알바에서 이전보다 조금 더 노쇠한 그들과 만났을 때, 우리 모두는 두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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