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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Jul 08. 2022

김치학생.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김치학생.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범하고 적막했던 야근 후의 퇴근길 버스 안. 멀미를 조금이나마 피해보고자 버스 뒷문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집까지는 한 시간 남짓, 뒷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신선한 바깥공기에 위안을 얻으며 30분쯤 달렸을 때였다. 누가 봐도 내용물을 알 수 있는 정도로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 봉지에 담긴 김치. 한 포기 가득 담겼을 법한 봉지를 든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올라타셨다. 제대로 밀봉이 되진 않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 안의 공기는 이내 시큼한 김치 냄새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 


'이 상황이 뭐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치 국물 범벅이 된 버스 뒷문 앞.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김치 한 포기. 붉은 국물이 튄 사람들이 뱉는 욕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이 풍부해진 김치 냄새까지.

…… 

'어떡하지?' 내가 뭘 해야 하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 친구는 이미 어느 정도 수습을 마쳐가는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물티슈를 만지작거리는 거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중략)



본인이 만든 상황이나 결과가 아니었음에도 그 친구의 얼굴에선 짜증이나 불편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너무 밝은 표정과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혹시 휴대폰 번호 좀 알려줄 수 있어요? 저는 곧 내려야 하는데 고맙고 미안해서..."


"네? 휴대폰 번호요? 아..."


동성의 인물이지만 어쨌거나 대화를 걸어오는 처음 본 사람이었기에, 낯선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학생의 어려움이 내게 전달됐다. 나는 얼른 가방을 뒤적여 명함을 꺼내 전했다. 


"아!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여기 센터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마음이 너무 예뻐서, 진짜 뭐라도 선물하고 싶어서 그래요. 여기 제 핸드폰 번호 있어요. 꼭 여기 번호로 문자 한 통만 보내주세요! 꼭이요." 


나는 그렇게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두 개 지나쳐서야 종이에 쌓인 김치와 함께 내릴 수 있었다. 평온했던 30분, 그리고 폭풍우 같았던 30분. 평범한 듯했던 나의 퇴근길 1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더라. …… 


'왜 연락이 안 오지?' 하며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울린 반가운 문자 알림 소리. 믿고 연락을 줬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중략)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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