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무섭다 이제 발로 먹고살아야 하나
그림을 그린 지.. 언.. 28년?
내 나이 7살부터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그냥 그림을 잘 그렸고? 그냥 그림을 그렸다. 나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줄 슨 친구들보다 친구에게 그려달라고 줄 선 친구가 많아 그녀가 다니는 미술학원을 갔던 게 나의 첫 미술학원이고 그 나이 7살이다. 엄마는 내가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그 시절 장학생으로 공예고를 나와 미대생이 되었지만 옷가게를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피가 어디 안 갔나 보다. 그리하여 그날로 미술학원을 쭉, 그림을 쭉 그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과정과 자랑을 지나 어른이 되어 여전히 나는 그림을 그린다. 안정적이지 않음이 가장 큰 단점이고 뿌듯함이 가장 큰 장점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직업이 된 것이 나의 큰 장점일 거 같다. 힘든 프리랜서 생활을 어째 어째 잘 보내고 있다. 처음부터 프리랜서가 되려고 한 건 아닌데, 운이 좋게 잘 맞아 굴러갔다. 그리하여 3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 내 소개를 할 때,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단어를 붙인다.
아이가 너무 빨리 생길 까 걱정했던 우리의 염려와 다르게 꽤나 고군분투하여 2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그 사이에 자궁근종 수술을 하며 생애 첫 수술도 하고 시험관도 한번 했다. 시험관을 한번 했지만 1.5번 했다에 가깝다. 통틀어 한 번하고 처음엔 수정된 난자만 빼서 보관하고 자궁근종 수술을 먼저 했다. 난임이란 참으로 숨이 막히는 과정이었다. 그 일은 차차 털어놓을 일이 있다면 놓고 나는 운 좋고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포기하니 자연임신이 되었다.
바쁨 속에 시간은 절로 흘러 어느새 임신 중기가 되니, 아침부터 몸이 심상치 않다. 입덧이 없었던 나는 그다지 힘들지 않은 임산부 생활을 지내고 있었는데 붓기는 쉽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이상하다. 퉁퉁 부어있는 느낌? 그게 뭔지 어렵지만 마디마디가 아프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지만 나는 특별히 왼손이 더 그렇게 오른손 또한 그렇다. 손이 아프니 공포가 몰려온다. 평생 그리던 그림을 못 그리는 건 아닌가. 왜 이런 걸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주먹이 잘 (?) 아니 주먹까지 쥐지도 못한다. 작은 고무풍선을 준 듯한 포즈만 될 뿐 힘이 없고 손이 아프다. 평소 손에 뼈소리 내는 것도 걱정할 만큼 무거운 것을 오른손(오른손잡이)으로 들지 않을 만큼 손을 아끼는 나인데 양손의 고통은 가장 무섭고 가장 크다. 아주 가벼운 손 운동을 하는 것이 아침의 습관이 되었고 지금은 결국 파라핀 베스라는 물리치료실에 있을 법한 기계를 사서 하루에 2-3번 손을 파라핀에 담근다. 두고두고 이것이 가장 효과 좋았다. 나중에도 계속 쓰기 좋다는 친구와 작가님들의 조언으로 구매했다. 물론 연휴 동안 그냥 너무 아파서 구매했다.
이 걱정이 그냥 임신 중 걱정의 일부이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그래 그렇게 손이 아팠다" 했으면 좋겠다. 지금 113일 남은 나의 가장 큰 나에 대한 걱정은 손이다. 다 괜찮아지길...
오늘은 기상이 늦어 아침도, 파라핀도 못하겠다. 얼른 챙겨 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