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일까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내가 자취를 안 해봐서
집 없는 서러움을 몰라서 집에 별 미련이 없나
싶었던 찰나가 있었다
엄마가 주시는 따신 밥 먹고
집에서 학교 다녔던 토탈 19년? 20년 덕에 나는 내 집!
이런 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아파트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온 아이는 아니다
구구절절 나의 집을 이야기해보자면
내가 가장 잘살던 시절은 내 나이보다 한참을 내려가고
내 키가 지금의 2/3? 쯤 되던 시절 10살이다
1999년이었고 세상이 멸망한다 해서
초등학교 3학년이었음에도 그렇게 기도를 하고
전쟁이 나면 아빠랑 오빠를 어떻게 잘 숨길 지를 연구했다
그 해에 엄마와 아빠는 드림컴투르! 하여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가구를 전부 새로 맞추었으며
거실엔 맞춤책장이 들어왔다
엄마아빠방 할머니방 오빠방 그리고 나는 어디서 잤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내 방은 없었다
거실에 책장 맞춤에 책상도 있었는데 그게 내 거였다 아마 거실이 내 방이었던 모양이다
첫 아파트라 행복했고 매주마다 산으로 들로 놀러 가서 행복했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그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우린 모두 어렸고 지금 보니 엄마는 너무나 젊었다 엄마 나이 마흔이었다
그 뒤로 이사를 다녔다
앞의 구구절절함에 비해 매년 이사 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신도시를 나와 아파트로 이사 갔다
그리곤 한 3-4년 만에 단칸방 두 개로 이사를 갔다
할머니 단칸방 하나
엄마 명의로 하나
아마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엄마 가게 뒷방 하나
아파트가 갈기갈기 찢어져서 5분 거리의 방이 되었다
그 방 모두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고 3 때까지 나는 그 집에 살았다
원래 알던 친구들에겐 조금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면서 집을 초대하지 않았다
초대하는 친구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2층에 사는 집주인 딸인 친구였다
원래 친한 사이가 아녔는 데
나는 그녀와 자매처럼 친해졌다
남동생만 둘 있는 그 친구와
오빠 하나뿐인 나는 자매 같은 베프가 되어
2층에서 라면을 끓이고 1층에서
함께 드라마를 보며 먹었다
대학교도 부산에서 다니다 보니 성인이 돼서
집 밖에서 산 적은 2번
외노자 시절과 외노자와 다를 바 없는 교환학생 시절
겁 없음을 초월한 그 시절엔
작은 나는 나하나 누울 곳 없을까 라며
겁 없이 몇 개월을 외국에 혼자 갔다
(언제나 깨닫지 누울 곳은 다 돈이 란 걸)
아무튼 없는 와중에 용케 매번 누울 곳을 찾았다
라면 끓여 먹던 집
그 집 뒤로도 이사를 3번 하고서야
지금 집으로 이사 왔다
어쩌면 집이 더 애틋하고 우리 집 우리 집 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단칸방 살던 시절의 나가 있고
아파트 살던 시절의 내가 있고
또 신도시 살던 시절의 내가 있어서
나는 좋았다
또 그 처지는 언제 바뀔지 모른다 라는 생각도 한다
나 되게 비관론자 같으면서도 천하태평한 사람 같은 데 결론은 우리는 엄마 아버지 엄마의 도움 없인
상상 속의 신혼집을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이왕이면 지금 알콩달콩 우리의 공간에서 그대로 신혼집을 차리자~ 라는 결론이 났다
참
그렇다고 그. 예랑. 그도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다소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는(?)
텔레비전 속 아파트의 신혼집을 상상하며 살아왔다
그건 그의 로망이었을 것이다
그 로망을 접어두는 데 약 1년쯤 걸린 거 같지만
그의 마음을 돌려 지금 동거하는 공간에서 신혼집을 가지려 한다
그래도 우리 나름의 목표는
2년 안에 다음 집으로 더 나은 조건 집으로 가는 거다
그 나은 조건은 학교가 있고 안전한 모두가 가고 싶은 그런 공간일 수도 있고
햇살이 잘 들어오고 새소리 나는 공기 좋은 공간일 수도 있고
교통의 중심지, 모두가 모이는 곳 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우리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더 공부하면서 2년을 살아보겠다
이 신혼집에서, 이 작업실에서, 이 땅콩주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