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새의 변(辯)

인간의 언어

by 홍경

대개의 텃새는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 산의 나무에게 저 산의 나무 이야기를, 이 마을의 나무 사정을 저 마을의 나무에게 전한다. 따스한 봄에 민들레의 투정을 들었다면 더운 여름 시끄럽기 짝이 없는 매미에게 들려주는 식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새들은 연신 이야기를 전했다. 매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작은 생명체 중 가장 딱한 생명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늦여름까지 우는 매미였다. 한 여름 씩씩한 매미들의 짝짓기가 끝나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미묘하게 울음소리가 변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유가 한여름 짝짓기 철을 놓쳤거나 울음소리가 멋지지 않아 사랑을 이루지 못한 못난이 매미들의 처량한 세레나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난 늦여름 내성적인 매미 한 마리가 내게 말해주어서 알게 되었다. 한여름의 매미와 늦여름의 매미는 종이 다르다는 것, 늦여름의 매미는 늦여름에 나타나 가을을 지내다가 간다는 것. 스스로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이미 많은 것을 깨우쳤다고 생각해 왔지만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지천이다.


다른 생명체들의 삶을 통찰하기엔 나는 그저 보통의 새일뿐이다. 하지만 다른 새와 확연히 다른 점도 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에 별 흥미가 없다. 그 대신 누군가의 이야기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산에 사는 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역시 다른 인간들과는 좀 다르다. 우선, 그는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 관해 궁금한 점을 하루에 몇 가지씩 물었고, 그는 경계심 없이 차분히 말해주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듣기만 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어쩌면 이런 것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사람과 새가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범한 상황은 아니므로. 그는 나를 그냥 '새'라고 불렀다. 그는 나에게 그가 불러주는 나만의 이름을 바라는지 여러 차례 물었지만 나는 원하지 않았고 그도 딱히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새라고 불렀고 나는 그 편이 좋았다. 그는 구멍이 숭숭 뚫린 낡은 포대와 닮았다. 담아 둘 것만 담아 둔 채 거의 대부분은 질질 흘리고 다녔다. 말없이 늘 혼자였지만 감추지 못하는 다정함과 그 짙고 깊은 속내의 그을음을 나는 안다. 그를 나 만큼 잘 아는 존재는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아 삶의 방식마저 바꾸었고 결국 아버지보다 더욱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저 삶의 일부를 등지고 있었으나 그는 그의 삶 전체를 등지고 있다. 그것이 더욱 그를 그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인간의 셈을 빌어 표현하자면 나의 나이는 마흔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생에서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급함을 느끼며 요즘 그를 자주 찾는다. 그 역시 어렴풋이 나의 남은 시간을 감지하고 있다. 나와 그는 비슷한 나이를 살았지만 형태가 다른 것처럼 주어진 육체의 시간이 다르다. 수명은 모두 다르며 형태가 유사해도 그 안에서 또 다르다. 이 세상 온갖 것들은 모두 다르고 항상 변한다. 유일하게 그 흐름을 타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들이라 생각한다. 인간들은 계속해서 단정 짓고 단정을 지으면 고정되고 불멸한다고 믿는 듯하다. 어디에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애써 부정한다. 산에 사는 그는 다르다. 흘려보내고 받아들이고 순간에 집중하며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다르게 태어났을까? 태어난 후 달라졌을까?

그의 말없음을 좋아한다.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생각한다면 소리를 가진 모든 것들은 한 음절도 쉽게 입 밖으로 소리 내기 힘들 것이다. 나와 그의 대화는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운을 보내고 암호화된 기운을 풀어 인지한다. 아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와, 누구나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기운을 느끼고, 기운을 통해 답하는 법을 스스로 각자 터득했다. 그가 인간을 향해 말을 쏟지 않으려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일까? 나 역시 생애를 걸고 보이지 않고 소리 나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을 다했다.


인간의 언어는 저주와 같다. 언어에, 낱말에, 그 담긴 뜻이 고작 한 톨의 모래알 같이 하찮다. 그들은 그 하찮은 언어마저 밟고 있는 땅에 따라 다르게 소리 내며 익히지 않은 소리는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은 결국 손짓과 표정과 가리킴으로 소통한다. 듣지 못하는 인간과 보지 못하는 인간과 말하지 못하는 인간의 언어 소통은 방법을 또 달리 한다. 말하지 않고도 소통하는 법을 잊은 인간들은 말함으로써 많은 큰 의미를 버렸다. 돌멩이는 돌멩이이고 보석은 보석이며 방금 먹던 음식은 금세 음식 쓰레기가 된다. 인간에게 쓰임이 다한 모든 것들은 쓰레기라 불려지는 순간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인간쓰레기라는 말조차 있다고 한다. 인간쓰레기는 누구에 의해 정해지고 그 쓰레기는 어찌 되는 것인가? 인간에 의해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면 그 모든 생명체가, 모든 사물이 본디 모습 그대로 제 자리에 온전히 서있을 것이다. 좋고 나쁨과 유익과 불익은 도대체 어느 기준으로 정해진 것인지 의아하다. 그도 그것에 대해서는 대화를 잇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미안함이 어렸었고 내게 사과할 듯한 표정으로 울상이 되었다. 그가 사과할 일은 아니어서 나 역시 좀 울적해졌다. 인간에 대한 대화는 대게 이런 식으로 울적해지거나 미궁에 빠졌다. 그런 이유로 가능하면 그의 개인사를 묻게 되는 것이다. 산의 사내, 그에 대해 일절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은 그저 새로서, 그의 그냥 나로서 할 수 있는 짧은 사색이자 변(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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