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옥과 그냥 새

이름의 의미

by 홍경

이유가 없는 것 중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받아 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면 살인과 이별일 것이다. 살인을 하고도 무표정의 덤덤한 그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이별을 고하면서 아무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그를 바라보는 것은 두렵기 그지없다. 우리는 그 너머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그동안 또다시 좌절할 것이다.


우리의 게으른 사내가 일정한 리듬으로 톱질을 하며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새 한 마리가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산옥, 산옥, 산옥!"

"어허, 산에서 그렇게 소란스러운 것은 좋지 않아."

"산옥, 오늘은 네 이름의 의미를 알려줘."

"뫼 산, 구슬 옥."

"산의 구슬."

"응."

"산에 구슬이 있다는 뜻? 아니면 구슬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뜻인가?"

"나도 처음엔 구슬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뜻으로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구슬 옥의 한자를 보면 임금 왕자의 가로 세 획 중 가운데 가로 획의 오른편 아래로 점 하나가 찍혀있단 말이야. 왕이 손에 들고 있는 그 점, 옥이란 거지. 옥좌의 그가 그것을 손에 넣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고역이 어려있겠느냐 말이야. 사람의 품이 들지 않은 보석은 없지. 자연이 내놓은 대로 가치로운 것이 얼마나 있을까? 가치가 어리려면 그 안에 인간의 품이 들고, 고통이 스미며, 삶의 많은 단편이 담기는 거지. 그렇게 하나의 옥이 만들어지고 결국 그것은 만든 사람과 분리되어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지닌 단 한 사람의 소유가 되는 거야. 그런 구슬이 산처럼 쌓여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알 수 없는 자신감과 승부욕에 타올랐어, 물론 어릴 때의 이야기야. 구슬치기, 딱지치기, 자치기, 망까기 나를 이길 자가 없었어. 손으로 나무에서 열매를 딸 때도, 땅에 호박을 심을 때도, 언제나 나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얻었고 내가 가지게 되는 것은 언제나 크고 많았어. 그냥 그랬다는 거야. 그런데 언제나 문제는 정작 나와 상관없는 나를 둘러싼 것들로부터 시작되었어. 끝없이 한계를 만들어내는 굴레, 그것을 벗어나려 허둥대다 보니 스무 살이 되었지. 나는 그때 알았어. 산에 묻힌 돌, 곧 구슬이 되려는 자가 나였어. 나는 어디에나 흔히 있는 돌멩이와는 다르지만 단지 조금 다른 돌멩이일 뿐이었어."

"산옥, 그럼 지금은?"

"내가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 때부터 이미 평범한 돌멩이긴 어렵지. 어렵게 되었어. 이미 나는 세상에서 많이 떨어져 나왔고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 어떻게든 하루, 하루 진심으로 사는 거지."

"그럼 옥은?"

"되겠지, 때가 되면. 다듬는 시간이 필요할 뿐."

"너는 지금 다듬는 시간을 보내는 건가?"

"새야,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여기 이곳에 이렇게 존재하느냔 말이야. 톱질을 하고, 쏟아지는 톱밥을 보고, 쓰러지는 소나무를 기다렸다가 그것의 머리퉁을 자른 뒤 지게에 실을 거야. 소나무의 아랫 둥이는 끌고 내려가야지. 집에서 다시 톱질을 하고, 그렇게 작게 잘린 나무를 도끼로 쪼개겠지. 그리고 헛간에 차근차근 쌓을 거야. 이 모든 움직임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나는 존재할 의미가 없다는 거지. 내가 서고 앉는 것과, 먹고 자는 것과, 읽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 때가 되어 모였다 흩어지는 바람과 같은 것인데 의미를 담고 있으나 그 의미는 내가 씌우는 것이지. 그것을 나는 나를 다듬는 시간으로 인식하는 거야."

"산처럼 쌓인 구슬이 너라면 참 좋을 텐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아쉬워하게 될 거야."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중요한 것은 아니야. 정작 제 자신의 문제도 본질을 모르거나 왜곡하기 일쑤니까."

"소나무와 오늘을 약속한 이유는 뭐지?"

"막연하게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나무들도 있지만 마지막 날을 선택하는 나무도 있어. 그것을 난 진심으로 이해했고 돕는 것뿐이야. 소나무가 오늘을 택한 이유는 소나무만 알겠지. 새야, 너는 이 세상에 생필품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선물 같은 존재일까?"

"산옥, 어떤 존재이고 싶어?"

"난 아무래도 선물 같은 존재이고 싶어, 가능하다면. 요구하거나 당연시하면 안되는 소중하고 설레는 선물. 없다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만일 받게 된다면 너무 소중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는 그런 선물 말이야. 그런 선물은 내어주는 쪽이 때와 장소와 종류를 정할 수 있고, 당연하지 않아서, 의외여서 당혹스러울 만큼 기쁘겠지. 무용해도 그것에 담긴 본디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 편이 난 좋아."

"나는 생필품 쪽이야. 그다지 큰 존재감이 없어 보여도 없으면 당장 문제가 되는 그런 존재. 어째 산옥은 이름부터 이미 선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돼."

"새야, 너에게 이름을 지어줄까?"

사내가 빙긋 웃으며 새에게 물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건 필요치 않아."

"그냥 새?"

"응, 그냥, 새."


사내는 푸드덕 날아오르는 '그냥 새'를 바라보며 애초에 그런 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떠올렸다. 지금 베고 있는 이 소나무는 곧 쓰러질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사내가 한쪽 발로 살짝 밀어주면 충분하리라. 아직도 사내는 나무를 가득 쌓아 올린 지게를 지듯 수많은 쓸모없는 의미를 어깨에 지고 있었다. 끝나지 않은 생애의 무게인 것이다. 목사의 방언이 산을 울리기 시작했고, 그냥 새는 그냥 하늘을 향해 휘잉~ 별다른 의미도 없이 사내가 내려다 보이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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