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아닌 바로 오늘
사내의 집은 땔감으로 장작 나무를 사용했다. 쉽게 타는 자잘한 땔감은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일 때 사용하고 더디 타들어 가는 나무 장작은 방을 데우거나 온수를 사용하기 위함인데 마침내 LPG 가스레인지를 들여놓은 후 자잘한 땔감을 모아 저장하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배추김치를 자잘하게 썰고 물을 부어 끓인 김칫국에 밥을 간단히 먹고 해가 오르는 모습을 보며 사내는 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나무로 만든 지게를 지고 톱과 낫을 챙겨 뽀드득 눈이 밟히는 겨울 산을 올랐다. 오늘 그는 아직 죽지 않은 노송을 베기로 했다. 산에 눈이 내려 쌓이면 가느다란 철사로 만든 덫을 놓아 산토끼를 잡곤 했는데 그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소나무였다. 눈 위로 토끼의 발자국이 많이 찍힌 길목을 찾아 가느다란 철사로 올가미를 만들어 작은 넝쿨 나무에 고정해 두면 간혹 덫에 걸린 산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겨울의 들판에 농약에 절여둔 콩알 몇 알을 뿌려두면 간혹 꿩을 잡을 수도 있었다. 먹을 것이 귀한 겨울 산에서 산토끼 고기와 꿩고기는 그에게 더없이 훌륭한 영양식이자 별미였다.
나이가 많은 소나무는 옹이가 빡빡하고 단단해 쪼갤 때 언제나 씨름을 해야 했다. 요령 없이 힘으로 하다가는 제대로 된 장작 모양을 갖추지 못하고 대충 찢어 놓은 닭가슴살처럼 흐느적거렸다. 전기톱 같은 것은 없었다. 연장은 줄로 밤새 잘 갈아놓은 큰 톱 하나와 낫, 그게 전부였다. 그는 나무를 벨 때 절대 도끼를 사용하지 않았다. 도끼로 숲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나무가 잘려 쓰러질 자리와 방향을 살핀 후 자리를 잡고 앉아 잘 갈아진 톱으로 소나무의 아랫 둥이를 썰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나무여서 톱이 쉽게 움직여졌다. 톱을 당길 때마다 톱밥이 그의 쪽으로 한 줌씩 쏟아졌다. 입에 넣고 씹으면 들큼한 맛이 날 것 같은 상큼하고 시원한 향이 났다. 그는 이 소나무 향이 좋아 코를 벌름거리며 요령 있게 톱질을 했다. 서늘하고 메마른 겨울바람이 그의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조용한 숲에 썩~ 썩~ 톱으로 나무 베는 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아름드리 소나무 지름 삼분의 일 만큼 베었을 때 팔과 배 근육이 당기고 몸이 데워져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잠깐 톱을 끼워둔 채 일어섰다.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켰다. 올려다본 하늘은 맑고 차갑고 평온했다. 언제나 하늘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비를 내리고 눈을 뿌리며 빛과 어둠을 번갈아 내릴 뿐이었다. 사내는 근처 숲을 돌러보았다.
인가와 멀찍이 떨어진 이 외딴 산속에서 그는 홀로 십 년째 살아왔다. 세상의 모든 가치로운 것들은 이미 그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관심이 없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쫓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이 산을 찾는 외부인들은 대체로 산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자들이었다. 산에서 얻으려는 그 무엇을 지키는 것이 사내의 임무였다. 그의 주인은 읍내에서 큰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는데 애초에 사내는 그 양조장의 일꾼이었다. 스무 살부터 양조장 잡일을 시작했고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연애도 못해본 채 나이가 들어 서른이 막 넘어서자마자 주인이 산속에 허름한 집을 지어 산으로 올려 보냈다. 주인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했고 사내는 별 불평 없이 그 외로운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 색이 바랜 방문 밖으로 대문이나 담도 없이 평상이 덩그렁이 놓여 있었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간혹 그 평상에 앉아 쉬거나 물을 얻어 마시곤 했다. 사내가 사는 산의 능선은 완만하고 길이 잘 터 있어 오르기 쉬웠고, 반대편으로 넘어서면 바위 투성의 가파른 면이 자리 잡고 있어 대개 산을 오른 사람은 다시 그 길로 되돌아 내려와야 했다.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같아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적은 수확물들은 눈감아 주었으나 지나치게 많은 양의 수확물들은 사내가 되돌려 받았다. 그 산에는 장뇌삼과 은행, 잣, 밤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고사리, 고비, 더덕, 산도라지, 칡, 도토리는 천지였다. 사내는 장뇌삼과 은행, 잣, 밤나무 곁을 지켰고 벌초를 하거나 제초제를 뿌렸다. 산에서 일을 하거나 집에서 등산객을 관찰하는 사내의 일상은 나름의 규칙을 지니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어났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해가 지면 불을 밝히지도 않은 채 조용히 누워있다 죽음을 맞이하듯 잠이 들었다. 세상에 닿는 인연의 끈이 없으므로 언제, 어떻게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삶이었다. 사내 스스로를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다만 많은 것에 큰 의미를 담지 않았고 미련을 갖지 않았고 무엇보다 행복했다. 인간의 소리가 닿지 않아서, 아침에 온갖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산에 물드는 색으로 분별할 수 있어서, 별의 민낯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겨울의 저녁은 이르게는 다섯 시가 되기도 전에 시작되는데 그 긴 밤은 언제나 차가운 별을 쏟아냈다. 모양을 바꾸며 이쪽 하늘에서 저쪽 하늘로 기우는 달은 애인의 기분 같아서 보기에 들뜨고 좋았다. 산의 사내는 그렇게 하루, 한 달, 한 해를 보내고 보내왔다.
산의 사내를 발견한 한 남자가 눈 위로 위태롭게 걸음을 옮겨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말을 건냈다.
"나무를 베시나 봐요?"
"네, 반쯤 숨을 거둔 소나무인데 약속한 날이 되어서 베고 있어요."
"약속한 날?"
"아, 네, 소나무가 베어주길 원하던 그날이에요, 오늘이."
"네..."
"목사님은 오늘 좀 일찍 산에 오셨네요?"
"글쎄요, 어제 눈이 많이 내린 편이라 아내가 오늘은 가지 않는 게 좋다고 말렸지만 아무래도 오르고 싶은 날이었어요. 이런 날 무리여도 산 기도를 하고 내려가면 얼마간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산은 뿌리를 내린 것이든 뿌리 없이 떠도는 것이든 언제나 한결같이 기다리지 않습니다. 기다리지 않아서 머물고 싶고 오르고 싶은 것이겠지요."
"산에서 일하고 계시지 않으면 평상에서 물 한잔 얻어 마시고 가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기도만 하고 내려가야겠네요. 허허허."
"조심히 오르셨다 돌아가세요."
"선생님도 지게 지고 눈길 내려가실 때 조심하세요."
사내는 길 쪽으로 허둥대며 되돌아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개신교회인지 가톨릭인지, 신흥종교인지 모르겠으나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 그는 생각보다 자주 이 산에 올랐다.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기도를 했고 방언을 했다. 작고 흰 기품 있는 얼굴에 가지런한 치열, 테너톤의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함께 대화를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사내의 톱질은 다시 시작되었다. 소나무 톱밥 향을 맡으며 조용히 가곡을 불렀다.
울 밑에서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농약에 절인 콩을 던져둔 눈이 녹다만 양지에 장끼가 내려앉았다. 어쩌면 오늘 꿩고기를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내는 빙긋이 웃었다. 바로 그때 저만치 윗산에서 울리는 귀에 익은 목사의 외침, "할렐루~야!". 장끼는 그대로 푸드덕 날아올랐고 숨죽여 바라보던 사내는 얼굴을 평평히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