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보내는 산중서신 1

자신이 정한 날

by 홍경

안녕하세요, 선생님.

바야흐로 겨울입니다. 이가 부딪혀 딱딱거릴 만큼 추운 방에 앉아 있으려니, 겨우내 옷을 두텁게 입지 않으시고 굳게 닫혀 있던 선생님의 언 입술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이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저로선 여전합니다. 저는 아직 이렇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남겨진 이 세상에서 그 이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계속 변하고 있고 한시도 같았던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 어떻다' 말하곤 하지만 '바로 지금'과 '라고 말할 수 있다'가 앞과 뒤에 생략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 자신에 대한 것들도 제 스스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보다도, 선생님보다도 나이가 많은 소나무를 낮에 베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그리 오래도록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산토끼 올가미를 볼 요량으로 산에 오르던 눈의 겨울과, 고사리를 꺾기 위해 허리를 굽히던 비의 여름과, 진달래를 맞기 위한 바람의 봄과, 번거롭게도 산 밤을 줍기 위한 낙엽의 가을에 저는 그 소나무와 함께 였습니다. 산의 많은 나무 중 그 나무는 어떤 이유인지 제게 말을 걸어왔고, 느낄 수 있었고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산에 사는 그들의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산에 사는 그들 중 바로 그 소나무와 바로 그 새, 두 존재와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 둘을 제외하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나무가 제게 말을 걸게 된 이유이자 그의 소망이었던 그 일로 저는 오늘 산을 올랐고 마침내 그는 뜻을 이뤘습니다. 오늘이라 하여 소나무에게서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어느 소나무보다 소나무 다웠으며,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었습니다. 마르지 않은 소나무의 향이 제 몸에 배어들어 아직도 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 소나무는 그렇게 자신의 향을 남겼고 계속해서 저는 그 냄새를 맡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망할 마음은 없지만 선생님도 그러셨습니다. 교탁에 처음 올라서셨던 첫 등교일에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미묘하게 짓다만 미소와 너무나 하얀 피부, 말을 아끼시는 듯했지만 제어가 되지 않으셨는지 중간중간 아랫입술을 깨무셨습니다. 아이들을 시간을 두고 지켜보셨고, 한 아이, 한 아이에게 본인만 알아들 수 있는 칭찬과 충고를 하셨습니다. 학기 초 어느 날, 양동이를 들고 복도 끝에 섰을 때 선생님은 제 뒤에서 '막내야." 라며 부르셨습니다. 제가 놀라 뒤돌아 보자 "어, 너. 너는 딱 봐도 막내거든. 맞지?"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너무 다정하셨습니까? 그 덕에 너무 지치셨던 것입니까? 당신이 보고 싶었던, 그 수동적인 시선으로 갈망하던 세계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제가 선생님께 여쭤 보았을 때, 저는 선생님이 살짝 눈시울을 붉히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그 눈은 제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당신의 뒷모습은 언제나 제 아버지를 그림자로 드리우며 마음 쓰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조회와 종례 지시사항을 확인하러 1학년 교사실에 들어갈 때마다 선생님의 피부에서 옷자락에서 맡았던 소주 냄새는 지루한 당신의 삶의 단편이자 단면에서 흐르는 피와 같았습니다. 삶에 대해 관조적인 사람은 선생님과 다릅니다. 구약과 신약, 반야심경, 법화경, 화엄경 그 어느 곳에서도 당신의 모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서들은 순간에 대한 순도 높은 의지와 집중, 진심을 요구합니다. 저는 살면서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퍽 많이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는 지표가 많고 태도나, 말씨로 갈음하는 때가 많습니다. 좋다고 느껴지는 모든 것은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의미와 노력이 없이 단순히 연기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결국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등거리에서 비겁함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처음 목격한 것은 제 아버지에게서 였고, 그다음으로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한 두 사람이기도 하고, 또한 죽어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채 용서하지 못한 두 사람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소나무는 어제 아침, 숲 속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산 중의 제 집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오는 통에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산에 올랐습니다. 소나무는 눈을 감고 서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마른 가지에 조금 쌓인 눈을 흩어냈습니다. "눈이 올 것 같습니다. 틀림없어요. 오늘 눈이 많이 올 겁니다. 지난밤, 새가 전하는 정자나무의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동네에 서 있는 정자나무도 이미 많은 가지가 말랐다고 합니다. 그 정자나무는 동네 한가운데 서서 그곳에서 나고, 자라고, 죽어가는 인간들을 여러 세대에 걸쳐 지켜보았습니다. 정자나무가 새에게 말하기를, '인간의 집과 옷과 탈 것이 달라졌고, 먹을 것의 수확량 역시 달라졌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내고 수정을 거듭하며 이루 낸 많은 성과물들에 싸여 더욱 인간다워지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이제 확연히 구분 지어져 있고, 자연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식된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을 특별히 다르게 보아주지 않고 다루지 않으며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며 소원하고, 의지하며, 추억한다. 나는 이제 자연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에도 인간은 놓아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합니다. 오늘 눈이 많이 온다면, 내일 나를 베어주세요. 완벽한 장작과 땔감이 되고 싶어요. 부탁합니다."

오늘 저의 소나무를 베며 인간에 대해, 결국 선생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온갖 것에 의미를 풀어놓고, 온갖 것에 미련이 많습니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우리'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자연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하나가 되기는 영 어렵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에 대한 회의와 염세적인 태도 이면에 오히려 힘이 잔뜩 들어간, 해체되지 못한 욕심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요. 스스로도 어쩔 수 없었던 욕망의 깊고 큰 울림을 참을 수 없었던 것 아닐는지요. 그래서 저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어도 늘 진심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자신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에 진심을 담아, 저와 타인을 향한 심술이나 기만 없이.

선생님이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또다시 생각해봅니다. 좀 더 견디셨다면 어땠을까요, 끝까지 다 드러낸 미소와 제어하지 않은 진솔한 언어의 흰 피부를 지닌 선생님,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본 듯이 선연(鮮然)합니다.

마흔 번째 서신입니다, 선생님의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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