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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Jul 20. 2022

다정한 숫자 (2)

나는 본디 외로웠던 것, 외로움의 모퉁이 *1

나는 외롭다. 이 외로움은 누군가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네가 없어서, 그가 없어서, 어머니가 없어서, 혹은 다른 그 누군가가 없으므로 외로움이 늘 있다 여겨왔다. 이런 종류의 외로움이라면 충족된 조건에 의해 언제든 가득 차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외로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 나무는 어느새 커다란 그늘을 드리웠다.

오직 일에 전념을 하고, 막 시작된 사랑에 매몰되거나, 혹은 내 영혼이 홀연히 무엇인가에 빠져들 때 비로소 나는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었으나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몰입의 상황은 종료되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나는 또 외로움의 심연에 떨구어졌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카드를 건네주었을 때, 그 카드에 쓰인 '외로움'이란 단어는 오롯이 홀로 외로이 였다. 외로움은 처음부터 나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찰나였으므로 나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외로움은 본디 나였다. 나는 채워질 수 없도록 입구를 단단히 막은 집이었다. 그 카드를 손에 들고 강변의 한 공터에 한참을 조용히 서있었다. 바람에 물결이 일고, 나무가 조용히 흔들렸고, 크고 흰 새가 날아 올라 휘이~ 사라졌다. 땅 위의 모든 것은 홀로 조용히 그저 있었다. 그저 있음으로 만났고 그저 있음으로 헤어졌다. 위와 아래가 하나였고, 좌와 우가 하나였고, 안과 밖마저 하나였다. 내가 본디 다른 사람에 비해 외로움을 자주, 깊이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 나는 이 외로움으로 많이 울었고, 멍하니 있었는가 하면, 밥을 삼키지 못했고, 땅을 보며 걸었고, 미친 듯이 책을 읽었고, 잠들 때를 제외하곤 음악을 들었다. 인간들에 둘러싸인 나는 더욱 외로웠으므로, 그 외로움은 너무 잔인하게 사실적이어서 가능하면 혼자 있고 싶었다. 나의 성향은 외향적이다.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참견이 잦으며, 장난치는 것을 퍽 좋아한다. 외향적인 사람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서, 들고양이에게서, 가로수에게서 살아 있거나 죽은 모든 것들에게서 심상을 읽어 내며 그렇게 지내다 문득 모퉁이를 돌면 홀로 된다. 홀로 되기 전에도, 홀로 된 후에도 언제나 외로운 것이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떠 생라면을 오드득 오드득 먹다 외출 준비를 했다. 너무 외로워서 백화점에 갔다. 때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 원피스를 입어보고, 머플러를 샀고, 통굽 구두 한 켤레도 샀다. 리본 자동핀을 고르고 있는데 매장 안쪽에서 대기 중이던 그가 말했다. "저희 브랜드는 헤어핀 전문 브랜드여서 잘 망가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자재가 다른 핀이거든요." 나는 두리번거렸고, 그가 나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머리핀은 잘 망가지고, 잘 잃어버리는 것 중 하나여서 가볍게 사려 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사기가 좀 그렇네요. 하지만 이 리본이 마음에 들어요." 체크카드를 내밀어 결제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사은품이라며 이것, 저것 챙겨 아주 작은 종이백에 담아주었다.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 백을 들여다보니 빨간 카드가 들어있었다. 그 카드에는 "당신은 외롭군요?"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다시 불안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그래 보였어?" 이상한 기분에 혼잣말을 했다. 조금 더 외로워진 것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공터에 차를 세웠다. 나의 외로움은 이미 옷이 되었고, 신발이 되었으며, 가방이 되었다. 카드를 다시 꺼내 몇 개의 글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맞아요."라고 말을 해보았다. 차라리 그렇게 홀로 말을 하고 보니 덜 외로워졌다. 긴 머리칼을 끌어올려 핀을 꽂았다.

외로움의 모퉁이에서, 단 하나의 내가 단 하나의 핀을 꽂고 단 하나의 카드를 보며 단 하나의 그를 떠올렸다. "당신도 외로웠군요?"라고 조용히 말해보았다..


(홍경입니다) 외로움을 바로보기 위해서 외로움이란 단어를 한 바가지 들이부어 글을 지어봅니다. 불친절한 글이 되었고, 그럼에도 조용히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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