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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Jul 31. 2022

다정한 숫자 (3)

달라서 사랑이야, 서로 다름의 *2

보통 두 개로서의 효용은 완벽하게 같을 것이란 조건이 붙는다. 길이가 다르거나, 두께가 다르거나, 재질이 다르거나 무게가 다르면 반드시 두 개여야 하는 이유가 무색해진다. 요컨대 잘못 가른 젓가락이나 다리 길이가 다른 철봉 혹은 사다리는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이 느낌을 유지하며 다음 문장에 주목해 보자.

가능하면 두 개가 한쌍을 이룰 때 같거나 비슷해야 하고 그것은 사람끼리도 무관하지 않다.

두 사람이 같거나 비슷해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당신은 알겠는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관념적이고도 주관적인 모든 것들이 그렇듯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그런 분별의 영역이다.


단편적이고도 흔한 예로 결혼할 상대에 대해 비슷해야 잘 산다고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 본인 외모나 양가 부모의 성품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비슷할 수 있을까? 비슷하다기보다 비슷하다 여긴다 함이 타당해 보인다. 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웨딩홀의 위치가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있는지 확인하는 하객들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양가가 위치한 지역 간의 거리가 멀 경우 중간지점에 웨딩홀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 정도 되면 하객들은 모두 그 점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나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어떤 이에겐 중요한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그러나 미루고 있었던 타투를 한 후 친한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중 한 동료가 눈살을 찌푸리며 뾰로통하게 말했다.

"갑자기 낯설어지네. 너 이런 사람이었어?"

그래서 그녀에게 웃으며 나는 대답했다.

"언니, 타투 하기 전의 나와 타투하고 난 후의 나와 뭐가 달라요? 언니는 내가 타투를 하지 않아서 좋아했던 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했겠나? 그냥 함께 까르르 웃었다.

나를 평소 아끼던 동료가 손톱만 한 타투 하나로 이질감을 느끼고 보였던 차가운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신념이 된 긍지와 도덕심을 넘어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때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에피소드는 나의 경우 차고 넘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거침없이 하는 편이기에 그렇다. 타인의 동의는 필요 없다. 취향에 관한 한 대중이 가지는 촘촘한 잣대는 그리 의식하지 않는다. 그 편이 훨씬 낫다. 살아가면서 선택하고 취하고 버리는 모든 과정에 일일이 누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거나 의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상대의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속박한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내가 지키는 신념이나 도덕성과 별개로 타인의 성향이나 취향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2, 둘이어서 생기게 되는 그 지점, 다르거나 혹은 같다는 인식이 생기는 그 지점이 나는 몹시 흥미롭고, 가능하면 각자의 특질로 계속되길 바란다.


연인으로서의  사람은 완벽한 동일시에 의해 샴쌍둥이처럼 하나가 된다. 둘이 이질감 없는 짝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 애쓰는지를 지켜보며 인간들에게 '같다' 개념의 위상이 거대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개체로서의 1인이 만나 커플,  하나인 둘이 되려는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자세는 유의미한 것이다. 싸우지 않는 부부보다 싸우는 부부가   산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말은 상당히 불편하다. 싸우지 않는 부부라 함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도 전에 포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고, 싸우는 부부라 함은 둘이 되기 이전의 본디 모습 그대로를 상대에게 보여주며 이기적인 바람을  얹어 인정받으려는 단계를 의미하므로  모두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무엇이  낫다고 말할  없는 서로 다른 관계의 양상일 뿐이다.

연인일 때는 본디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을 끌어낸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 완벽해 보이는 상대의 장점 중 지속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는 것은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에게 본디 없던 모습을 꾸며내는 것 또한 좋지 않다. 결혼 후 변했다 느끼는 것들은 대개 그 사람 본디 모습이며, 몰랐다 느끼는 것들은 대개 나와 다른 점일 것이다. 배우자가 된 그의 본디 모습과 다른 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안타깝게도 상대를 포기하거나 계속해서 싸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때로 너무 따지지 않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 지혜로울 수 있다. 모든 것이 바뀌고 변하는 것임에도 그 사람 본디의 성향과 한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변함없는 사랑의 일면이다.


서로 다름의 2는 이런 식의 전개도 가능하다. 사무실 책상 밑에 조금 불편한 7센티 굽의 스틸레토 힐과 컨버스를 두고 지낸다. 집에서 사무실을 오갈 땐 그날그날 날씨와 상황에 따라 신는 신발이 달라지지만 사무실에서는 업무적으로 힐이 필요할 수도, 컨버스가 필요할 수도 있기에 예비용으로 두었다. 뮬을 신고 출근한 그날,  갑자기 행사 지원을 하게 되면서 사무실용 슬리퍼를 신고 있다가 구두로 갈아 신고 대강당에 달려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달리기에 자신이 있지 않은가! 현장에 빨리 도착해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실과로 돌아가는 계단을 오르다 마침내 알게 되었다. 7센티 굽의 스틸레토를 왼발에, 3센티 굽의 뮬을 오른발에 신고 있었다. 뮬의 코가 뾰족한 편이고 두 구두가 아이보리 계열의 가죽이어서 앞에서 보면 그리 티가 나지 않았지만 나는 인지한 그 순간부터 실과에 도착해 슬리퍼를 갈아 신을 때까지 걷기가 영 어색하고 힘들었다. 내가 불편해하니 마주치는 동료들도 그제야 굽이 다른 구두를 알아보았다. 나는 그 당시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떠올리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3시간을 마음에 새겼다.


우리는 가방에 달린 끈이 아니다. 스핑크스의 두 눈도 아니며, 마차의 두 바퀴도 아니다. 같을 수 없고, 비슷하지 않아도 괜찮다. 7센티 굽의 스틸레토와 3센티 굽의 뮬이어도 무사하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당신에겐 단물인가 썩은 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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