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경 Aug 31. 2022

다정한 숫자 (4)

아름답고 외롭고 완전하고도 유일한 숫자, *3의 기록

1. 욕심의 농도, 3

아무것도 없는 자가 하나를 손에 쥐게 되었을  손에 힘을 빼긴 어렵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어떤 의미인지 아직은 절절하고 갖게   하나의 의미가 절실하다. 그에 그치지 않고 더욱 노력한 끝에 얻은 결실로서  개는 조그맣게 숨구멍을 뚫는다. 양손에 나누어 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친다.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는 ,  이때부터이다. 간혹 어떤 이는 손에 쥐고 있던   가장 작고 볼품없는  하나를 내던진  새로 얻는 하나를 손에 쥐는가 하면,  손을 모아   모두를 움켜쥐는 이도 있고,  많은 수를 대비해 주머니를 짓기도 한다. 셋에 이르러서야  사람의 본디 모습을 직면할  있다. 셋인 상태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심은  세상을 갖는다 해도 채워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2. 3 세판

지기 싫어해 승부 내기를 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후엔 내기할 일이 거의 없지만 어릴 적은 모든 날이 승부의 나날 아니던가! 애초에 이기려는 생각이 없어-그 이유는 이미 밝혔죠? 지기 싫으니까요- 그리 적극적이지도 진심이지도 않은 자를 포함한 모든 내기는 심하게 호의적이고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것조차 배려를 받는다. 하기 싫다는 내가 이길 때까지 삼세번의 기회를 준다. 지고 싶은 사람, 그만하고 싶은 사람이 배려받는 삼세번은 욕망을 넘어선 호연지기의 기회이다. 너무 차이가 나지 않은 만큼의 시간차로 천천히 손을 내밀돼 찰나의 셈을 하고 결국 질 수 있게 내야 한다. 표정 또한 중요하다. 이렇게 된 것, 이기고 싶다는 듯한 표정을 적당히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진짜 이기고 싶었는데 졌다'의 뉘앙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기겠다고 안간힘을 다하는 그들의 바람이 삼세판에 의해 반짝이기도 하고 실망의 회색에 뒤덮이기도 하는데 그 선을 넘어선 나에게 그 판은 조금 견디어야 하는 지루함의 순간이자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티켓이기도 하다. 승부를 내야 하는 순간은 크든 작든, 중하든 소소하든 있기 마련인데 나는 언제나 그것으로부터 얼마간 자유롭다. 그것에 연연하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경쟁자에게 그렇게 중한 순간이라면 기꺼이 난 내기의 승자로서 얻게 되는 모든 것을 시작도 하기 전에 몰아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경험해본 실패감은 처리하기 곤란한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에 나이든, 상대이든, 이 세상 그 누구이든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그랬다.


3. 3위, 3등

간혹 1위는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2위와 3위를 가를 때가 있다. 이런 경우 3위는 처연하기 짝이 없다. 자연스럽게 1, 2, 그리고 3위의 서열이 정해진 경우는 좀 덜하다. 몹시 비근한 실력 차이로 3위가 결정되는 순간은 지켜보는 내가 다 서럽다. 이런 경우는 스포츠의 경우, 특히 올림픽 경기에서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역시 나는 이런 종류의 서사에서 흥미나 재미를 느낄 수 없다. TV에서 노래나 요리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중에 목소리만으로 진짜 가수와 모창한 사람을 가르는 모 프로그램에서는 2위인 사람이 세인의 이목에서 벗어나는 외로운 순간이 자주 있었다. 3위는 탈락자에 해당되어서 길게 인터뷰를 하는 등 충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1위와 마지막 승부를 보아야 하는 2위, 제 이인자의 경우는 1위한 자를 축하는 분위기에 가려지고 만다. 카메라나 시청자는 1위한 자에게 모든 이목을 집중한다. 나는 모니터 안쪽에서 홀로 조용히 제2인자의 자리에 서서 담담히 승자를 축하해주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순간이 당혹스럽고 편하지가 않아 어느 때부터인가 그 프로그램은 시청하지 않는다. 당신의 그런 모든 경험이 유감이기 때문이다.

석차 3등은 7등만큼이나 그 굴레를 벗기 어렵다. 초등학교 시절 3과 7의 틀에 갇혀 지루한 나와의 싸움을 했었다. 어머니가 7등을 벗어나면 1등까지는 어렵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3등의 늪은 7등 보다 더욱 부드럽고 끈적했고, 무엇보다 1, 2등과는 확실한 실력 차이가 있었다. 3등의 늪을 벗어나면서 어머니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3등 해보신 적 없죠?"

나는 10대 때 이미 나이스한 1등을 보았고, 그 이후에도 나이스한 태도의 제 일인자를 많이 만나보았다. 역시 그들의 승리에는 요인이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초연하고, 좀 물러난 듯한 여유 있는 상대의 모습이 좋다. 만년 3등인 사람이 긴장하고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며 급기야 타인을 질투하거나 미워하기에 이른다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한 1등이지만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그 고독하고도 고통스러운 모습이라니!


4. 3 총사

무리를 짓다 보면 그 수가 3이 되는 경우가 있다. 3이 가지는 그 견고함에 더 이상의 추가 인원은 없는 경우가 많다. 여자 아이들의 경우 5 공주, 7 공주도 있긴 하지만 이들은 대개 무던하며 순한 친구들이 구성원의 대부분이다. 자기 고집이 있거나, 빼어나게 예쁘거나, 무언갈 무척 잘하거나 하는 등의 진한 빛깔을 지닌 사람들이 무리를 지었을 때는 언제나 3 총사로 마무리된다. 물론 4 총사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4 총사는 그 무리 안에서 의견 다툼이 잦으며 둘씩 쪼개진 채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다. 그런 면에서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며 적절히 의견 조율이 가능한 것은 3 총사 만한 것이 없다. 혼성의 경우 홍일점, 혹은 청일점 한 명과 나머지 성의 2명이 이루는 3 총사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3 총사, 그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든든한 지원자이자 조언가를 친구로 둔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3 총사의 모양새를 갖춘 동료 그룹이 여럿 있으며 그들은 따로 혹은 같이 서로의 인생을 나눈다.


5. 제3자

나에 의한 당신은 당신이 아니며 내가 본,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이다. 당신의 모든 것은 나의 앎에 의해 구현되었고 이해되었다. 당신을 통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며, 알고 싶은 것을 인식하고, 그 좁은 이해의 테두리 안에 당신을 가두었다.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 혹은 그 누군가에 의해 재해석되며 단정 지어진다. 그런 안쓰러운 당신을 위해 나는 제삼자의 태도를 간혹 취한다. 그렇게 제3가 되어봄으로써 비로소 당신은 나의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당신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지혜롭고, 단정하며, 평온하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나무를 스치는 바람과도 같고, 나무를 묻는 땅이며, 흐르고 흘러 나인 것이다. 내가 당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나를 그렇게 보아줄 수 없겠는가?


6. 3각관계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은 특유의 우유부단함으로 상황을 이끈다. 양 끝점에 위치한 두 사람과의 중간에서 나름 공평할 수 있도록, 모두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들 중 하나를 정리하는 것은 왠지 불안하고 두 사람이 주는 각각의 다른 안정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이어도 어쩔 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에게 안착한 이 복수(複數)의 사랑은 발각되어야 종료된다. 경쟁자가 있음을 알게 된 가련한 그의 연인은 누가 그를 선점했는지, 그에게 누가 더 소중한가 등을 따져본다. 그에게 듣고 싶은 것은 완벽한 한쪽의 정리와 더불어 그 상대가 전혀 소중하지 않다는 대답이다. 복수의 연인을 둔 그는 각각의 연인에게 각각의 험담을 하거나 핑계를 대며 겁먹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다. 이런 관계를 지켜보면서 경쟁구도의 두 사람 모두 비겁한 무게 중심의 한 사람을 속시원히 내칠 것을 기대하지만 대개의 경우 한 명의 더 오래된 연인이 남는다. 그의 헌신적인 모습, 매우 크게 반성하는 모습, 다시는 안 그럴 것이다라는 맹세, 혹은 경쟁자를 떼어낸 승자로서의 기쁨? 타인의 사랑을 지켜보며 무어라 할 것인가? 행복하기를 빌어줄 뿐.


7. 3일장

두 번의 장례는 모두 겨울이었다. 하얗고 차가운 상복을 입고 오른 산은 군데군데 눈이 덮여 언 땅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올린 검은색 관을 뜯고 송판으로 지은 관으로 시신을 새로이 안치한 후 언 땅에 묻었다. 검은색 관은 부수어 봉분 근처에 땔감으로 사용했다. 길고 하얀 연기가 외삼촌의 담배연기와 함께 올랐다. 그 불을 향해 등을 쪼이며 봉분을 만드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여름에는 물이 날규."

"그류. 여가 물길이쥬."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 물이 얼어서 흙이 붕 떠있잖유. 아들이 어려서 더 뭐라 말은 못하겄는디, 이 자리는 증말 안좋은 자리유."

"쯧쯧쯔."

5년이나 지나 추석 무렵 내려간 고향의 할머니 봉분엔 성글게 자란 떼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생전에 머리숱이 많지 않으셨는데 돌아가셔서도 숱이 많지 않구나. 담배를 좋아하셨던 분이라 담배에 불을 붙여 묘 앞머리에 꽂았다. 구수한 담배 연기 냄새가 하늘로 올랐다. 묘를 등지고 앉아 산 아래를 내려보았다. 그렇게 슬프지도, 그다지 애잔하지도 않은 기분. 담백하고 가녀린 그녀였다. 부지런하고 잔소리도 많고 정도 많았던, 내가 무척 사랑했던 사람.

여름 장마에 오른쪽 옆구리가 푹 파여 붉은 흙 고랑이 생겨있었다. 아무래도 이장을 하거나 화장을 해야겠다고 오빠가 일어서며 말했다.

"막내야 그때, 3일장 치를 때, 장례식장 육개장 맛있지 않았냐? 요즘 장례식장은 그 맛이 안나."

"오빠, 나는 3일장 치를 때, 거기 편육이 맛있드라. 새우젓 올려서 먹으면 입안에서 슬슬 녹는 게 참 맛있었는데. 요즘 장례식장은 편육이 거의 안나오드라."

"묘 앞에 돗자리 깔고 절하는 데 발 냄새가 너무 심해서 우리 넷이 웃느라 못 일어났잖아. 아, 현수형이 소리 내서 웃어가지고 동네 어른한테 혼나고. 아하하하하하하."

"그 발 냄새 오빠한테 난 거였어. 아 진짜, 웃기다. 큭큭큭"

오빠가 지는 석양을 향해 트럼펫을 꺼내 불었다.

"오빠, 이 곡 진짜 좋다. 곡명이 뭐야?"

"어, 말러의 장송곡."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한 숫자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