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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Sep 05. 2022

모쪼록 나 (2)

힘을 빼는 완벽한 방법

통증이 일상에 내려앉아 일일이 나를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겹의 경험치와 함께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매일, 매사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가늠하고 하루에 할당된 활기의 총량을 계산하며 살고 있는 나에 관한 글을 쓰면서 깊이 깨달은 점-이 라든가-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않겠다. 그럴 기분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와 커피 한잔 마시며 이유 없이 냅킨을 접었다 폈다 하는 등의 행동을 섞어 십 분 이내의 푸념으로 끝내야 하는 정도의 것인데 그 마저도 이젠 내키지 않는 이유로 신과 당신에게만 들려줄 요량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다.

평소 당신은 이완된 상태인가요? 그러고 보면 유난히 흐물거려 보일 만큼 이완된 채로 생활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런 류의 사람을 한눈에 잘도 알아보는 이유는 내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두려움이 많은 성격. 깨어있을 때와 잠이 들어있을 때조차 긴장되어 있다. 다음은 힘이 빡 들어간 나에 관한 에피소드 몇 가지이다.


어머니를 따라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갔던, 당시 핫플 '찜질방'에서 어머니가 여탕 세신사에게 나를 들여보냈다.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눕힐 수 있는 수술대 같은 침상에 물 한 바가지를 쏟으며 전문가인 그녀가 나를 눈짓으로 불렀다. 그녀는 불공평하게도 비키니 차림의 모습으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나는 수술대에 몸을 눕혔고 그녀는 무려 선채 위에서 아래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반듯하게 눕혀 놓았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내 몸을 탁탁 쳐댔다. 아, 왜, 왜, 왜, 왜, 요?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더니 옆으로 누우라 지시했다. 어색한 몸의 뒤척임. 나의 팔을 양쪽으로 들어 올리며 힘을 빼라고 소리쳤다. 타올로 몸을 문지르면서도 계속 힘을 빼라고 소리쳤다. 나는 마지못해 가엾게도 입을 조금 벌리고 눈의 힘도 풀었다. 말 그대로 힘을 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그녀가 크게 웃으며 어머니를 눈으로 찾았다.

"저기, 여사님, 딸이, 이 아가씨가 진짜 귀엽네요. 몸에 힘을 뺄 줄을 모르네. 몸의 힘을 빼랬더니 힘 빠지는 표정을 짓고 있어. 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애가 원래 긴장을 잘해요. 그리고 원체 몸이 뻣뻣해. 하하하하하"

뭐가 그리 웃기단 말인가! 기분이 나빠져서 몸에 힘이 더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오빠를 따라 오락실에 갔다. 당시 갤러그계의 신(神)인 작은 오빠가 한도 끝도 없이 앉아서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록을 자신의 기록으로 덮어 이니셜을 적어놓곤 했다. 그날 역시 그는 의미도 없는 신기록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고 뒤로는 어린 구경꾼이 셋, 넷 모여들고 있었다. 멋진 승자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서며 옆의 머신에 동전을 밀어 넣고 말했다.

"너도 해봐."

빨갛고 동그랗고 맨질맨질한 조이스틱에 내 왼손을 올려준다.

"이렇게 하는 거야."

설명을 간략하게 듣고 게임이 시작됐다.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나의 터프하고 긴장된 채 힘이 바짝 들어간 손. 금방 시시하게 끝났지만 나의 손은 땀에 젖어있었다.

"으이구!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잖아. 오락기가 흔들릴 만큼 힘을 주면 어떡하냐! 쪼끄만 게 기운이 세다, 세!"

이게 화를 낼 일은 아닐 텐데 왜 오빠는 화를 낼까? 다음에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다시 한번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나의 조그만 심장은 빠르게 두근거리며 진정되지 않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손엔 조이스틱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매끈한 그 동그라미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만.


원고를 타이핑하는 디자이너 막내 시절. 타인에 비해 영타가 빠른 나는 영문 원고 타이핑 전문이었다. 의학계 학술지 원고는 거의 내 전담이었고 영문 타이핑은 본디 외주를 주었는데 내가 짬짬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따로 봉투를 받곤 했다. 내 맞은편에 앉았던 일러스트레이터가 디자인팀 인간들 캐릭터를 만들어 출력한 후 신년 선물로 돌렸다. 그림을 보니, 나란 인간의 손이 올려진 자판에서 별이 두, 세 개 튕겨 나며 한편엔 친절하게도 '탁탁탁 타닥타닥'이라 의성어가 적혀있었다. 얼굴 없이 손과 자판만 그려진 그 캐릭터를 보고 모두들 손뼉을 치며 웃었다.

"맞아, 맞아, 그래, 그래."

"자판 소리가 젤 큰 사람이지!"

"자판 알이 부서져라 치곤 해!"

"힘 조절이 안돼, 맞아!"

"와~ 이렇게 정확히 캐릭터를 뽑나?"

흥! 그래요,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항상 털을 바짝 새운 고양이처럼 살아온 내가 요가를 시작했고 새로이 스스로에 대해 관찰의 시간을 자주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힘을 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가는 과정, 이것이 나에겐 요가였다. 의식적으로 힘을 빼본 적이 없었으므로 효과적으로 목적을 가진 채 이완된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익혀야 했다. 보이지 않는 근육이나 호흡으로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알 수가 없었으므로 동영상을 찾아 올바른 이완과 긴장이 적용된 몸의 모양을 학습하고 연습하며 '느낌'을 기억했다. 괜찮게 구현하고 있다는 확신 없이 몇 년을 보내고, 어느 순간 점점 불이 켜지는 근육의 신호들, 적절히 힘을 빼지 않으면 절대 켜지지 않는 그 기분 좋은 긴장감. 힘을 빼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 몇 년이 걸렸어! 사람들에게 요가를 말할 때 어쩔 수 없이 힘 빼기에 관해서는 긴 시간을 할애해 정성껏 설명하곤 한다. 나에게 큰 의미이니 절로 그렇게 되는 것. 나로 인해 인도된 요가인 몇이 말하곤 한다.

"힘 빼는 게 뭐라고 이게 몇 년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힘 빼는 것이 뭐라고 나는 몇 년이나 걸린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아직도 힘을 빼는 완벽한 방법을 모른다. 문을 닫을 때, 스마트폰에 잭을 꽂을 때, 코를 풀 때, 음식을 씹을 때, 누군가를 장난으로 툭툭 칠 때, 술잔을 부딪힐 때, 다음에 다시 열 병뚜껑을 닫을 때 언제나 힘이 과하다. 적절한 힘을 준다는 것은 깊은 주의력이 필요한 듯하다. 통증이 있는 손으로 수행하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동작 하나하나에 얼마나 과하게 힘을 주었는지 끔찍한 통증이 뒤따를 때 참으로 어이가 없다. 통증에 깜짝 놀라 왼손을 바라보다 정말 나의 힘 빼기는 고쳐질 수 없는 것일까? 절망하고 만다. 어쩌면 신은 힘을 빼는 완벽한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해 류머티즘을 주셨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막, 너무 힘을 주며 살았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정도이지만 다행히 신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요. 당신도 무언가에 관한 완벽한 방법을 모른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망하지 않고, 의지를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터득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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