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물오징어
요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퍼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요. (여러분도 그렇겠지요?)
대학 졸업 후 초년생 때 시골쥐가 서울에 상경하여 자취를 했거든요. 시골 친구와 함께 지냈는데 홀로 있는 때가 더 많았어요. 친구와 저는 직종이 달라 생활 패턴이 달랐으니까요.
평일의 특별하지 않은 흔한 저녁, 신의 계시처럼 초장 찍은 데친 오징어가 먹고 싶어 졌습니다. 바로 앞에 큰 마트가 있었으니까 머리를 질끈 묶고 오징어를 사러 갔죠.
"물오징어 주세요."
통통하고 탱탱한 물오징어 세 마리를 사서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초장도 하나 사고 오징어 땅콩도 한 봉지 샀어요.
요리에 대한 아무런 기초 상식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물오징어 속을 파내야 하는 것쯤은 알았어요. 속을 파내고 데쳐야 하니까 물도 끓여야 하고요. 개수대 수돗물을 틀고 검정 봉지에서 오징어를 꺼냈는데 맨손으로 그것을 만지니 조금 자신이 없어지는 거예요, 10% 정도 자신감 하락.
'이건 좀 곤란한 느낌인데. 차갑고 물컹해. 생명이 담겨있던 육체를 만지는 것은 정말 곤란한 느낌이군.'
'오우~! 이런! 눈이 마주쳤어!'
눈이 마주치는 순간 90%의 자신감 하락. 이제 남은 건 10%뿐.
왼손으로 물오징어의 몸통을 그러쥔 후 오른손으로 다리가 시작되는 눈 부분을 잡고 당기려는데 문득 검정 봉투에서 대기 중인 물오징어 등이 눈에 들어왔어요. 오징어 등의 심심한 여백을 메운 자연스럽고 다양한 점무늬, 그 위를 덮고 있는 현란한 홀로그램이 내 눈을 향해 레이저를 쏘고 말았지요. 레이저를 맞자마자 죽어있던 물오징어가 되살아나 다리를 꿀렁이며 검정 봉지를 건드려 부스럭거리는 듯했어요.
100%의 자신감 하락, GG!
'아, 정말 못하겠어, 도저히.'
얼굴을 어깨 너머로 돌린 채 검은 봉지에 들고 있던 물오징어를 담고 꼭 묶어 쓰레기통에 넣었어요.
자취하며 라면을 제외하곤 다른 음식을 먹지 않았으므로 처음의 요리였는데, 무엇보다 그것은 제 영혼의 음식이었고 만드는 법도 어머니를 통해 이미 수 백번 보았었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허무하게 'GG'를 외치고야 말았습니다.
1. 왼손으로 오징어를 쥡니다.
2. 오른손 검지와 약지 손가락을 오징어 몸통 속으로 넣고 돌려가며 안쪽 내장을 잡은 뒤 엄지 손가락의 도움을 받아 부드럽게 뽑아냅니다.
3. 내장을 빼낸 오징어 몸통을 물로 씻어 냅니다
4. 다리가 시작되는 부분의 살 쪽으로 내장을 잘라 내고 눈을 가위로 잘라 제거한 후, 다리 가운데를 벌려 까맣고 반짝이는 입을 손으로 뽑아냅니다(힘을 주어야 해요).
5. 껍질은 조금 질길 수도 있으나 예민하지 않은 경우 벗기지 않아도 괜찮아요.
6. 오징어의 다리에 붙은 빨판은 오징어 다리를 두 손가락으로 훑어내며 가볍게 다듬습니다.
7. 원하는 요리에 맞게 적당한 크기나 모양으로 잘라 요리합니다.
뭐랄까, 오징어 다듬고 나면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지요?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