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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Jun 29. 2022

다정한 숫자 (1)

말하자면 그래, 아무것도 없는 *0

수학은 0을 찾는 여정이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정답은 0을 찾은 후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낸다. 더했을 때 아무 영향력이 없으며 곱했을 때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0으로 귀소하는 수, 바로 0이다.


매일, 매 순간 타인에 의해 흥분되는 양의 수로부터 실망감을 지나 혐오로 향하는 음의 수를 지켜본다. 너무 오랫동안 마음이 들끓거나 가라앉는 것을 경계하며 '아무것도 없는' 0으로 돌아가기를 잠자코 기다린다. 이런 과정이 체득되기 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야 조금 익숙해졌다. 편치 않던 그 사람과의 관계를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0으로 돌아왔어. 원점이고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아. 이제부터 그의 실체를 보게 되겠지."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속아 바로 누웠다 돌아 누웠다 한다. 상대를 평가하고 인식하며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분류한 후 저장했다. 여러 사람들과 군락을 이루어 그 외의 사람들과 담을 쳐본 적은 없지만 나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무수히 선별했고, 나름의 기준에 의해 흡족한 소수와 관계를 맺었다. 온도차가 있었고, 이해의 폭이 달랐고, 머무는 시간이 달랐다. 많은 시간의 인연 속에서 서로 기회를 잃었거나 충분하지 않은 시간으로 아쉬움도 있었다. 지혜로운 사람, 점잖은 사람, 기품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어리석은 사람, 방정맞은 사람, 상스러운 사람 역시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둘러쳐놓은 망 안에서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깨닫게 해 주었다. 모두 귀하고 감사한 인연이다.

인연이 깊고 공감과 이해가 덧대여진 관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다면 신속하게 0으로 되돌아간다. 사람에 따라 0을 초과하는 양의 정수, 즉 자연수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0이다. 그렇게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른 후 저평가와 고평가를 하는 일 없이 있는 그대로 그를 바라본다. 이런 경우에는 다시 깊은 관계로 지내기 어려워진다. 흔치 않지만 정말 깊은 사이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역시 흔치는 않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0으로의 회귀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이것은 엄청난 부자가 하루아침에 0이되거나 그보다 더 많이 잃은 음수의 상태가 된 것만큼이나 처절하고 피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연인과 쌓아 올린 수많은 약속, 노력, 희망, 환희가 일순간에 소거되며 계속해서 이 0은 소중하게 여겨졌던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곱셈으로 날려버린다. 긴 인생의 여정에서 이 구간은 짧디 짧지만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상실감으로 인해 진하고 굵은 마디를 맺는다. 0으로 돌아가는 모든 경험은 놀랍게도 우리를 꿇어 앉히지 못하며 오히려 시야의 폭을 넓혀주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변수가 많은 인생이다. 아무리 더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변화시키지 않고, 아무리 큰 자아의 상을 가지고 있더라고 곱하면 소거되어 0으로 만들어주는 그 차분하고도 진지한 숫자가 좋다.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다'의 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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