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四十而不惑)

이제, 그만

by 홍경

마흔이 넘어 안정된 삶을 이룬 것이 늦은 것인가? 스스로 안정된 삶이라 여기는 모든 것이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므로, 시작부터 다르므로.

다른 것은 대개 불편하게 여겨졌다. 불편함을 조금 견딜 수만 있다면 결국 어느 면에선가 자유로워지는 법. 불편함이란 종이로 만든 비옷 같아서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더 큰 불쾌감이 찾아온다. 젖는 것에 대한 아무런 감흥도 갖지 않을 때 자유로울 수 있고, 종이로 비옷을 짓는 것이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수고라는 사실마저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편하다, 불편하다는 분별 자체가 참으로 불편하니 분별을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딱딱한 것을 입에 넣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불린 뒤 씹어 삼키듯 가까운 이의 삶과 죽음을 오랜 시간 동안 이해해보려 했었다. 할머니, 아버지, 이모, 그리고 선생님. 이들은 병으로 죽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한 나의 사람들이다. 이들 중 몇은 병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그 병이 그들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천천히, 계획적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한 결과였다.

별안간 세상을 등진 사람과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걸어간 사람은 결국 남겨진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자신이 베어질 날을 정한 '나의 소나무'처럼 '나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했다는 것이 나를 더욱 처연하게 만들었다. 살아있는 내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무게와 깊이감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툰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수만 번 자신을 죽여봄으로써 하늘타리에 앉았던 나비가 훌쩍 날아오르듯 자연스럽고 주도면밀하게 삶을 마칠 수 있었으리라.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며, 잠이 들고 깨어나며, 밥을 먹으며, 바느질을 하며, 어린 나를 업고 어르며, 술을 마시며, 혹은 책을 읽으며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자신이 성공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도모했으리라. 가끔은 속으로 소리 없이 울고, 가끔은 허탈히 홀로 웃고, 가끔은 거울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며 죽음을 떠올렸으리라.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싶지만, 그들은 원하던 대로 끝내 이룰 수 있었으리라.

갑자기 줄을 끊고 달아나는 연처럼 툭 끊어져 사라진 이들은 마땅히 다다를 곳에 다다랐을 것이라 믿어졌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은 마땅히 다다를 곳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흐느끼고 배회하거나 결국 그들의 뒤를 따른 이도 있었다. 당혹스러운 죽음은 필경 바람이 좋은 날 옮겨 붙는 산불처럼 그렇게 소리 없이 번지기 마련이었다. 나 역시 그들을 보낸 후 오랫동안 머리가 뜨거울 때마다 울었고, 훗날 조금 자라서는 끝없이 걸었다. 지금의 나는 미혹됨 없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 정의한 '안정'이었다.

사자(死者)가 된 그들이 살다 간 시절은 화려한 변화 속에 모두 고독했으며 배가 고팠고 얼추 배고픔의 끝자락이 희미하게 보일 때쯤이었다. 평온함이나 변함없음의 속성은 물성을 가진 세계에 결핍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가능한 만큼 모든 것이 회의적이었다. 1970년대, 뜨거운 시대의 '불붙은 전차'에 올랐던 이들 중 일부 사람들은 타버린 후 재가 되었고 넉히 견뎌낸 사람들은 뜻한 바를 이루고야 마는 성공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190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입구를 무난히 진입한 지금, 시간을 돌아보면 그 모든 울렁임과 냄새, 색채마저도 희미해져 그다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일어날 일들이 일어났었던 것일 뿐이라 생각되었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의미나 이해를 찾아 뒤척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나는 남겨졌고 남겨짐 또한 일어났어야 했던 일이었다. 또한 산중에서의 시간은 세인이 생각하는 종류의 무모함이나 회피가 아니라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놓아주었고 이제 산을 내려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냥 새'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나를 향해 날개를 접지 않았다.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으리라. 나는 알 수 있었다. 특별한 '소나무'는 잘게 잘라 광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고 가끔 나는 그 나무토막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소나무가 이 세상에서 보낸 긴 시간과 시간 속의 바람과 흙의 양분, 뿌리를 지나며 흐르던 물길이 나에게 전해져 왔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것, 지금은 있지만 과거와 미래에는 없는 것, 우리의 모든 것은 바뀌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되거나 이해된 것으로 남게 되어 있다. 그 정도의 사실 만으로도 덜 외로울 것 같았다. '백자고진이의 아들' 기백은 학교에 입학할 즈음 그의 어머니가 서울로 데리고 갔다. 조금은 상기되어 내게 사실을 알린 후 선채로 흐느껴 울었다. 나는 기백을 향해 축하와 위로 사이에 어정쩡 히 있었다. 얼마 지나 눈물을 닦고 씨익 웃으며 중지와 약지를 접어 흔들어댔다.

"피스~~~"


"피스~~~"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까,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용(無用) 한 것이 없으니, 나의 눈과 몸과 마음에 닿는 모든 것, 곧 그것이 나이다. 이제 지나간 이들의 과거를 놓아줄 것이다. 나의 과거와 미래를 놓아줄 것이다. 다만 물고기가 물속에서 그리하듯이, 나무가 꽃을 틔우듯이, 제비가 봄에 다시 돌아오듯이 현재를 살 것이다. 현재를 사는 나에게도,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