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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Oct 18. 2023

귀신의 시간에 난 거실에 앉아 있었지 (8)

믿고 싶지만 의심이 되는, 의심이 되지만 믿고 싶은

류머티즘 확진 4년 차, 통증이 있는 날과 없는 날이 불특정 하게 반복되었고 통원 치료를 지속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개의 날은 통증으로 힘겨웠고, 간혹 통증이 전혀 없는 날도 있었으니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나름 좋았던 날들이다. 약으로 꾸려가는 삶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안정감이 깃들 즈음 잠자코 있을 류머티즘이 아니었다.

 

당시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4학년이 된 큰아이와 함께 또 다른 방식의 돌봄이 필요했다. 오히려 유치원 보낼 때보다도 신경 쓸 것이 많아졌다. 방학 기간에는 점심시간마다 집에 가서 아이들 점심을 챙겨 먹이고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하며 사무실로 복귀했다. 근무 상황에 따라 이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새벽에 두 아이의 두 끼 도시락 4개를 싸두고 출근했야 했다. 1학년 신입생 작은 아이가 혼자 집에 있을 수 있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큰아이 하교 시간까지 학교 방과후수업을 받게 하고 둘이 함께 태권도, 미술, 피아노, 영어학원 등을 순회하며 하루를 보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면 두 아이 알림장을 확인하고 챙길 것을 챙긴 후에야 저녁을 먹었다. 당시 육체적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이 잘 견뎌주었고 묵묵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 주는 덕에 직장생활을 근근이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알아챌 수 없는 만큼 매일 아주 조금씩 류머티즘 통증이 깊어지고, 아픈 부위가 작은 관절에서 큰 관절로 옮겨졌다. 류머티즘이 홀로는 외로워 친구를 맞이했으니, 그는 바로 오십견. 오른쪽 팔의 활동 가능 각도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90도 보다 작은 각도로 팔이 열렸다. 옷을 입거나 벗을 때, 머리를 감을 때 느껴지는 그 끔찍한 통증.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몸은 염증과 통증이라는 버섯에게 순순히 모든 영토를 아낌없이 내어 주었고 정해진 수순처럼 오금 림프절에 염증이 심해지면서 결국 온몸의 림프절이 붓고 극한 통증이 피었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근육이 수축되어 목을 돌리기 힘들게 되자 누우면 돌아눕거나 스스로 일어나 앉을 수 없었고, 남편은 나의 등 쪽에 사선 방향으로 넓고 깊게 팔을 찔러 넣어 쉽게 으깨지는 소중한 덩어리를 들어 올리듯 세심히 살피며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나의 통증은 남편의 걱정과 고민이 되어 ‘그것’에 좋다는 약과 병원과 치료법에 대한 정보가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 의해 수집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부부는 평소 사이가 각별하고 깊이 신뢰하는 지인이 알려준 그곳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곳은 광주에 위치한 한의원이었다.

     

찾아간 한의원은 60대 초반의 풍채 좋은 ‘명의’와 조수로 보이는 60대 후반 마른 체격의 남성이 그를 돕고 있다. 한의원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가니 한약재 냄새가 훅 하고 달려든다. 천장에 끈으로 묶어 매단 약재가 바싹 마른 채 모빌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 아래 책상과 의자를 둔,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사무실에서 1차 문진을 한다. 문이 열려 있는 저곳, 누런 장판이 깔린 오래된 방 ‘같은’ 공간이 보인다. 들어서서 보니 두 칸의 방을 이어 붙인 형태로 바깥쪽으로 위치한 방엔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가 서로 허물도 없이 자연스럽게 엉켜 방석도 없이 방바닥에 앉아 있다.

뜸이나 시침이 이루어지는 안쪽의 또 다른 방에는 언제부터 깔려 있었는지 모를 요와 몇 명이 베고 누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원통형 베개가 놓여있다. 1980년대 가정집에서 흔히 사용하던 두툼한 요와 베개였는데 요는 흩뿌려져 있는 오래된 혈흔과 깊이 스며든 땟자국으로 원단의 본디 색을 가늠하기 어렵고 깔아놓은 후 단 한 번도 털지 않은 듯하다. 그 위에 톡 하고 올려진 베개호청은 아무리 삶아 빨아도 지지 않을 듯 보이는 땟자국을 뒤집어쓴 채 요와 같은 동질감으로 공간에 스며 있다.

명의는 요 위에 환자를 눕히고 시침을 하거나 사혈기로 사혈 후 부황을 뜨는데 부황기를 환자의 피부에서 떼어 낼 때마다 주르륵 흐르는 피를 화장실용 두루마리 화장지로 슥슥 닦아 내곤 한다. 그래서 요와 베개에 혈흔이 많구나, 나름 이해하려 노력한다. 명의는 또한 환자의 몸 곳곳에 뜸을 뜬다. 그로 인해 약초 냄새 가득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풍부한 연기다. 연기는 이 방을 가득 채우다 못해 벽지에 스며들어 벽지의 색을 누렇게 만들었겠다. 그렇구나, 이해가 된다. 이 방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료 행위는 색과 냄새로 이 공간의 일부가 되어 눈에 띄게 실존한다. 양방의 수술실에 소독약 냄새, 알코올솜 냄새, 주사 바늘을 고정하는 테이프의 냄새가 떠다니듯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한방의 냄새이고, 색이다.     

나의 차례가 되어 '실존하는 의료 행위로써의 요' 위에 엎드려 눕는다.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묻어야 하는 베개는 염치도 없이 더럽고 능청스럽다. 소심한 나는 원장의 허락을 얻은 뒤 얼굴과 베개 사이에 두 손을 끼워 넣고 손등 위에 이마를 대고 눕는다. 방바닥에 엎드려 누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금 림프절이 심하게 아프고 나머지 온몸 역시 모두 아픈 상태다. 최근 급속히 체중이 줄어 바싹 마른 몸집으로 숨 쉬는 것 마저 고통스러운데 이런 경험은 신선하다 못해 신성하고도 신비롭다. 가벼워진 몸이 공중으로 붕하고 떠 오를 것 같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베개의 감촉. 녀석의 속에는 버스럭거리는 왕겨가 들어있다. 우리 할머니 베개에도 왕겨가 들어있었지. 언제 적에 넣었는지 모를 왕겨가 하얀 베개호청에 감싸여 코를 박으면 바사삭 소리와 함께 할머니 냄새와 오래된 왕겨 냄새가 났었지. 머리를 좌우로 미세하게 바닥을 향해 누르며 작게 들리는-현재에 실존하는-왕겨의 소리를 듣는다.

명의는 내 어깨에서부터 등, 허리, 다리까지 차례로 사혈 후 부황을 뜬다. 피를 닦는 거친 화장지의 촉감, 피 묻은 화장지 뭉치를 툭하고 바닥에 던지더니 다시 그것을 주워 닦아내고 아무렇게나 던져두기를 반복한다. 명의의 모든 행위는 의도가 담겨있고 오랜 경험으로 자신감에 차 있다. 그는 시술 중에 연신 자신의 이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모든 말이 진실되게 느껴진다. 믿고 싶지만 의심이 되는, 의심이 되지만 믿고 싶은 나다. 시침하는 그의 손은 망설임이 없고 그의 오감은 내 피부 속 혈관과 림프선과 신경망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가 나의 머리와 손에 시침을 하는 순간 눈이 맑아지고, 숨통이 트이며 '신선한' 다량의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온다. 기관지가 평소보다 열 배는 넓어진듯하다. 후아~~~!


한의원의 한약을 짓고 그 약은 거의 먹지 않은 채 예약된 날에 시침을 몇 번 더 받으러 갔다. 그러던 중 병세에 차도가 없고 마침내 통증의 정도가 심각해지면서 대학병원에 2주간 입원했다. 그로써 한의원에서의 진료는 큰 성과 없이 미신처럼 내 기억 속을 떠돌며 시절 무용담이 되고 말았다.


신경 쓸 것이 많았고 스스로를 챙길 여유가 없다는 것이 당시 통증의 주된 요인이다.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제쳐두고 일상의 자잘한 일들을 신속히 처리해야 했으므로 통증은 내 삶의 찌꺼기가 되어 남았다. 젊음과 활기로 통증을 견디며 그 시간들을 정확히 관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현재의 '실존하는 나'로서 삶을 지속한다. 무엇보다 그 이후로 다시 입원할 만큼 아픈 통증이 없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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