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무늬 물고기

by 홍경

1학기 중1은 2학기 초6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성 친구에 대해 광적인 염원을 갖는다는 것.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중1이지만 관찰자로서 다른 높이의 계단에 올라선 듯 반 아이들을 지켜본다. 같은 무늬를 가진 물고기들처럼 그들은 해초 사이를 무리 지어 헤엄친다.


침착하게 그들을 지켜보면 누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랑에 빠지면 거의 비슷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대상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거나, 몸 전체를 돌리거나, 혹은 대상의 눈치를 살피며 옅은 교태에 가까운 애교를 부린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반대의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정도의 차이일 뿐 결국 같다. 특히 관찰 대상이 여자일 경우 확률 98퍼센트를 웃돌만큼 정확하다. 남자의 경우 극소수가 내 예상과 다른 결론을 품고 있을 때도 있다. 내 예상이 전혀 다른 곳에 꽂혔을 때 나는 나에게 속삭인다. ‘녀석도 녀석의 마음을 몰랐을 거다.’라고.

아이들은 매 순간 감정의 물결에 끊임없이 휩쓸리며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관찰자로서 나도 함께 물속에 있지만 지느러미를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나는 어쩌다 같은 무늬 물고기들의 관찰자가 되었을까? 물론 케이 때문이다. 케이는 무리 지어 다니는 물고기의 특성이 없다. 독립적인 위치에 혼자가 편한 케이였지만 동성 친구와 호감을 보이는 이성 친구가 많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나의 관찰자 모드는 케이를 조용히 탐색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지만 부록처럼 케이를 둘러싼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관찰 대상이 되어 버렸다. 나의 주인공 케이는 함께 무리 짓지 않고도 유연하게 자신의 영역과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며 지내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케이는 이미 알고 있는 채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타고 나는 사람이 꼭 한 사람은 있으니까. 다시 말해 이 세상 모든 이는 크든 작든 뭔가 하나는 배우지 않아도 남보다 특출 난 것이 있다.


나는 종종 케이를 짝사랑하는 여자아이들을 위해 편지나 카드의 원고를 써주었다. 내 원고를 베껴 쓸 편지지나 카드의 모서리에 그림도 조그맣게 그려주면 부탁했던 아이가 무척 행복해하며 소중히 가져갔다. 원고는 큰 고민 없이 그때, 그때 내가 케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적었다.

학년 초, 맨 처음 현정이의 부탁으로 써 주었던 카드의 문구는 이랬다. ‘너를 지켜보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게. 너를 정말 좋아해.’ 현정이가 건네준 카드의 오른쪽 모서리에는 눈과 하트를 그려 넣었다. 현정이는 문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감동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현정이와 친한 아이가 다시 나에게 부탁했고, 그 부탁은 다른 아이에게 계속 이어졌다. 원고 대신 써주기 릴레이는 급기야 반짝이는 케이를 넘어서 다른 반 남자애, 다른 학교 남자애 혹은 동성의 친구에게까지 범위를 넓혀갔다. 대상의 범위가 넓어져도 상관하지 않고 내가 케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적었다.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현정이는 종종 내게 자신의 종교, 가정, 학교생활에 대해 고민을 늘어놓는다. 케이를 짝사랑하면서도 주말엔 교회 오빠와 처음 손을 잡았다 하고,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고 남고(예상)로 등교하는 어떤 미상의 남학생을 보고 사랑에 빠져 정신을 놓아 버리기도 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정이의 애정 형태와 쉬는 시간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앞머리를 매만지거나 입술에 빨갛고 반짝이는 무언간 바르는 같은 무늬 물고기들의 행동들이 마냥 신기했다.

‘미술실 사건’ 이후로 나는 케이 관찰하기를 멈추었다. 왠지 내가 케이에 대해 아는 만큼 케이도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다. 어쩌면 케이가 나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1학기 중간고사 치를 때쯤, 나는 같은 무늬 물고기들의 고민 상담자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고민을 감정이입 없이 들어주고 다른 이에게 옮기지 않는 내가 그들에겐 큰 위로가 된 모양이다. 관찰자 모드에서만 가능한 일이긴 하다. 다시 말해 나만 가능한 일이긴 하다.

케이를 관찰하지 않는다 해서 관심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케이가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나 케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들을 전해 들으며 케이가 쓰는 언어의 결, 깊이, 정확도, 다정함에 놀라곤 했다. 말이 성대를 통해 밖으로 꺼내어질 때 그 음가들이 가진 힘과 예언력은 아빠가 늘 나에게 강조했던 바이다. 엄마의 인이 박인 사투리도 서울 말투로 바꾼 우리 아빠, 구어체보다 문어체를 더 많이 쓴다. 그런 사람이 내 또래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투덜이 현정이가 내 오른팔에 매달려 교회 오빠 얘기를 시작했다. 나와 현정이 뒤를 바짝 따르는 케이의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져서 현정이를 나무라도 상관도 없이 종알댔다.

“오빠가 여름 수련회를 안 간다잖아, 공부해야 한다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하냐고!”

“너도 그 오빠랑 공부해. 수련회 가지 말고.”

“수련회가 얼마나 은혜로운데!”

“신앙심이 깊은 아이구나, 너. 정말 몰랐네.”

현정이 덕에 교회는 오빠들 만나러 가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나니 조금 후회됐다. 현정이가 내 팔을 거칠게 놓으며 삐쳐서 앞서 걸어갔다. 어차피 갈림길이라 인사를 해야 했다.

“현정아, 미안. 내일 만나!”

입을 삐죽이며 뒤돌아보더니 말없이 고개 돌려 그대로 가버리는 현정이의 그림자에게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케이가 책 읽는 듯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너를 지켜보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게. 너를 정말 좋아해.”

순간 소름 돋게 놀랐지만 듣지 못한 척하며 조금 빨리 걸었다. 아닐 것이다, 케이가 그것을 알아채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좋겠다, 생각했다. 같은 무늬 물고기들에게 내가 적어준 원고들, 그것이 케이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란 것, 그것을 케이가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원고에 어떤 말들을 적었더라? 바삐 걸으며 내내 곱씹었다. 케이는 편지나 카드를 보고 읽는 것처럼, 내가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높은 소리로 연신 이어 말하며 따라왔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케이도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야! 너 뭐야?”

케이가 비열하게 웃으며 답했다.

“처음엔 같은 그림체의 엽서와 편지가 이상했어. 한, 두 번은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한결같은 문체, 읽을수록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다른 글씨의 여러 쪽지들. 그래서 몇 명에게 물어봤지. 그랬더니 내 생각이 맞았어, 너였어.”

“그런데 뭐! 어쩌라고!”

“왜 남의 마음을, 그렇게 함부로, 어쩌려고 대신 써줘? 네가 뭔데?”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나는 조용히 있었다. 케이는 다른 글씨의 여러 편지와 엽서를 내게 던지고 가버렸다. 편지와 엽서는 마구 펼쳐져 버림받은 나의 마음처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렀다. 어쩌면 나는 케이에게 이 글을 쓴 게 나라고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그림체의 그림들을 친필 서명처럼 엽서와 편지지에 그려 넣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바랬던 모든 일들이 실현되었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혐오스럽고 역겨웠다.

그 후, 같은 무늬 물고기들을 관찰하거나 고민을 들어주거나 원고를 대신 써주는 따위의 짓은 다시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독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케이는 전보다 더 많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책을 읽으면 그만이야, 그랬으면 좋으련만 나는 도무지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읽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에 책을 든 채 케이의 목소리를 따라다녔다. 같은 무늬 물고기들이 부러워 서러웠다.

“한심안!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조심하게 돼서 좋더라. 사람 이름을 또박또박 신중하게 부르다 보면 소중히 느껴져.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은 너의 이름이야.”

케이의 이 말이 생각날 때마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1학기 내내 케이의 목소리는 나의 빛이었고 또한 나의 그림자였다.


여름방학 중 케이가 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 얼굴의 스케치가 담긴 8절지 액자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심안아!”

“뭐야 그게?” 내가 어색하게 물었다.

“응, 이거 그때 생각나? 나 혼자 미술실에 있을 때…. 그때 처음 그리기 시작한 건데 다 그렸어. 주려고.”

연필만 사용한 인물화인데 오른쪽 아래에 알파벳 K로 서명되어 있었다. 케이는 정말 그림을 잘 그렸다.

“무슨, 내가 이렇게 못생겼다고?”

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툴툴거리며 뱉었다.

“맞아, 너 그렇게 생겼어.”

“케이 너, 정말 얼굴을 못 그리네. 사람 얼굴은 그리면 안 되겠다, 야.”

“내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 해도 못생긴 애를 예쁜 애로 그릴 순 읎음.”

케이는 얕게 키득거리며 이어 말했다.

“한심안!”

케이의 발음은 변함없이 매끈하고 완벽했다. 내 등줄기가 부릉부릉 울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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