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직장인 그 사이
직장인과 고등학생,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이 두 단어는 내가 약 반년 간 지녔던 사회적 지위였다.
사무실로 출근하면 직장인이 되는 줄 알았지만 여전히 미성년자였고 학생이었다. 학교 출석 대체를 위해 매일 업무일지를 써서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기말고사날에는 시험을 치러 학교에 가야 했고, 담임선생님이 회사로 찾아와 일하다 말고 선생님을 뵈러 가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회식 때마다 매번 술을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위치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회인이 될 날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다리며 나름대로 어엿한 직장인 행세를 하곤 했다.
수능날이었다. 전날 밤부터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은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신이 나있었고, 대학이 목표인 친구들은 잔뜩 긴장상태였다. 내 주변 고3중에 수능장에 가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대학에 가지 않을 건데 굳이 비싼 원서비를 내고 몇 시간을 숨소리만 들리는 교실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게 싫었다. 수험표가 있으면 여러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곤 하지만 그래봤자 원서접수비 본전이나 뽑겠지 싶었다. 가장 결정적인 건 수능날 회사에 가는 게 진정한 직장인이라 생각했다.
출근길에 수능 보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지만 시험이 시작됐는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평소 시시콜콜한 연락을 주고받던 시간에 휴대폰이 잠잠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 모든 19살이 시험지를 쳐다보고 있는데 나만 모니터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그냥 접수할 걸 그랬나? 왜인지 모를 외로움이 밀려왔다.
오후 5시가 되자 하나둘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결과가 어떻든 일단 홀가분하다고들 했다. 시험장에서 나오자마자 재수를 생각한다는 친구도 오늘만큼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는 수험표를 들고 쇼핑을 가고, 또 누구는 놀이공원에 간다고 했다. 휴대폰 속 친구들의 세상엔 축제가 시작됐는데, 내가 앉아있는 사무실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고요했다. 그 묘한 기분을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 설명하기엔 난도가 있다.
퇴근하고 당시 사귀던 준이를 만났다. 자기 수험표로 쇼핑하자며 옷가게로 데리고 갔다. 옷을 구경하며 어느 과목 몇 번 문제가 어땠고 쉬는 시간엔 뭘 했는지 재잘재잘 이야기하는데 맞장구를 칠 수도 공감해 줄 수도 없었다. 하루 종일 어딘가 헛헛했던 내 마음을 말한다 한들, 준이가 이해할리 없었다. 앞으로도 누군가 수능 이야기를 하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겠구나. 커다란 공감대 하나가 무너진 것 같았다. 스스로 선택한 일을 그렇게까지 후회한 것이 처음이었다.
시험장에 가지 않는다고 사회적 지위가 달라질 리 없었다. 그저 두 신분을 넘나들며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면 좋았을걸. 지금은 그때로 돌아가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도 그때의 선택을 아직까지 후회하고 있지는 않다. 수능은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 중 하나였고, 조금 더 살아보니 세상 모든 19살이 그날 수능장에 있던 건 아니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