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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나나 Apr 12. 2023

04. 25만 원으로 얻을 수 있던 것들

작고 귀여웠던 나의 첫 월급

 태어나 처음 급여 명세서를 받은 날이었다.

당시에는 손바닥만 한 종이로 월급날 아침마다 명세서를 나눠주셨는데 그곳에 나의 작고 귀여운 첫 월급 25만 원이 적혀있었다. 마지막 주에 입사하여 일주일치 급여밖에 받지 못했음에도 입꼬리가 자꾸만 움찔거리고 마음이 콩콩거렸다. 명세서를 고이 접어 가방에 넣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 이거 어디다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하루종일 돈 쓸 생각뿐이었다. 검색창에 [첫 월급] 이라고만 적었는데 연관검색어가 주르륵 떴다. 첫 월급 부모님 선물, 용돈, 내복... 그렇구나, 첫 월급은 부모님께 드리는 거구나. 첫 월급이 맞긴 한데 고작 25만 원이었다. 이걸 드리는 게 맞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금세 불효막심한 생각으로 바뀌었다.


'다음 달 월급은 더 많을 텐데, 이번에 드리는 게 낫지.'

25만 원으로 가성비 좋게 효녀 될 생각에 신이 났다.


 퇴근 후 은행에 들러 현금을 뽑았다. 내 피 같은 돈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잔뜩 긴장했다. '드르르르륵' 인출된 돈을 재빨리 봉투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의 첫 월급 언박싱을 위해 온 가족이 거실로 모였다. 나는 공손히 아빠에게 봉투를 드렸다. 귀여운 금액에 아빠는 웃으셨지만 딸내미 다 키웠다며 호탕한 리액션도 잊지 않으셨다. 내복 따위의 선물이 아닌 현금이라 더 좋다고 하셨다. 곧 아빠 차도 바꿔주겠다며 잔뜩 기대하시기도 했다. 든든한 딸로 인정받고 칭찬받는 건 좋았지만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마음 한편엔 아쉬움이 잔류했다. 그 치사한 내 마음을 아신 걸까. 아빠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어 내 월급에 보태시고는 봉투를 다시 돌려주셨다.


"아빠는 마음만 받을게, 대신 동생에게 용돈 한 번 줘."


 당시 중학생이던 남동생은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봉투에서 5만 원을 꺼내 동생의 두 손에 올려주었다. 동생은 "감사합니다 누님." 하며 입이 귀에 걸렸다. 누님? 누님이라니, 동생 입에서 나온 말에 온 가족이 웃었다. 매번 욕하고 싸우기 바빴던 우리 남매는 단 돈 5만 원에 돈독한 사이가 됐다. 아니, 월급에 아빠가 용돈을 얹어주셨으니 내가 들인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치사한 생각을 했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니 더 열심히 돈을 벌어서 계속 웃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 나에게 들어가는 돈이 줄어드니 부모님이 덜 힘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뿌듯함과 책임감이 동시에 생겼다.


 25만 원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래도 내가 처음 번 돈이니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 하고 싶었다. 회사 언니들이 들고 다니는 명품 지갑이 생각났다. 어릴 적에 아르바이트 좀 했다 싶은 친구들도 이름 들으면 알만 한 브랜드의 지갑을 들고 다니곤 했다. 이름 없는 지갑을 쓰던 나는 겉으로는 그런 거 다 사치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부러웠다. 나에게 주는 선물은 자연스레 지갑으로 정해졌다. 백화점에 혼자 가 본 적이 없어서 경험 있는 친구를 데리고 휘황찬란한 백화점에 들어섰다. 온통 새하얗고 높은 백화점은 왠지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곳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주 쇼핑가던 동대문 밀리오레랑은 꼭 다른 나라 같았다.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어딜 가야 할지 몰랐다. 친구에게 추천해 달라 했더니 또래 친구들이 자주 구매하는 브랜드에 하나씩 데려가주었다. 세상에, 지갑이 그렇게나 비싼 줄 처음 알았다. 10만 원 정도를 예상했던 터라 가격에 꽤 놀랐지만 괜히 창피해서 덤덤한척했다. 몇 바퀴를 돌다가 결국 찜해뒀던 명함지갑을 구매했다. 같은 디자인의 반지갑도 있었지만 그건 3만 원 더 비쌌다. 명함 쓸 일도 없으면서 3만 원을 아끼려고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 그래도 당시엔 금장 장식에 붙은 비닐을 며칠 내내 떼지 않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지갑이었다.


지금은 비록 15만 원짜리지만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벌면 100만 원짜리 지갑을 사리라 마음먹었다. 앞으로 10년 뒤, 29살쯤 되면 사고 싶은 건 마음껏 사고 아빠가 기대하는 차도 바꿔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8년이 지난 지금, 첫 월급에 10배를 벌어도 명품 지갑은 커녕 부모님께 용돈 한 푼 못 드린다. 일이 생계가 되기 전에 더 많이 드릴걸 백번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대체 그때 벌었던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시 저 날로 돌아간다면 아빠에게 봉투를 돌려받지 않을 것이다.


"아빠,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받아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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