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그 감정은 단지 '짜증'이 아니야

목 놓아 울 수 있는 공간

by 노나나

어릴 적부터 부정적인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편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나를 냉혈한, 포커페이스등의 별명으로 부르기도 할 정도로 감정표현이 없었다. 슬픔, 화남, 억울함, 서운함,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모두 '짜증' 이라는 감정으로 치부해버렸다. 누가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려 따돌림을 당했을 때도 엄마에겐 그저 '짜증나는 일' 이 있었다고 말했고, 남자친구와 헤어져 눈물이 미간까지 차올라도 그냥 '짜증난다'고 둘러댔다. 내가 "짜증난다" 라고 말하면 내 감정은 정말 짜증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스스로가 되게 이성적이며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독립한지 1년 쯤 됐을땐가, 어떤 커다란 슬픔이 나를 삼켰던 날이었다.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맘 놓고 울어본 게 처음이었다. 한바탕 울고나니 배가 고팠다. 퉁퉁부은 눈을 하고선 밥을 먹고있으니 이상하게 기분도 좀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아, 나도 슬프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구나. 내가 꽤 큰 눈물샘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일부러 슬픈 드라마를 찾아 보면서 울어재끼는 취미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 셀카를 찍어 올리는 일은 없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을 22살에 온전히 알게된 셈이다. 사람이 슬프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는 것을. 이 감정은 짜증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알게되었다. 나는 냉혈한이 아니라 아주 감성적이고 감정 기복도 크며 쉽게 상처받고 타인의 감정에도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그 동안 쿨한척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겉으론 괜찮은척 하고선 일기장에 억울함을 쏟아냈던 날도, 방 문을 잠구고 숨죽여 우는 날도 있었다. 엄마한테 보이기 창피해서, 내가 슬픈걸 알면 엄마도 슬프겠지 싶어서. 나는 엄마의 온실 속 예쁜 꽃이니까 항상 예쁘고 밝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감정을 가뒀던 것이었다.


부모님의 온실에서 나와 살면 멀쩡한 척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분노에 차서 괴성을 지르며 침대를 내려쳐도, 한참을 목 놓아 울어도, 외로움에 잠겨 혼자 처량히 소주를 마셔도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 나와 내 감정만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이 시간들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진짜 나'를 형성해갔다. 그리고 지금은 슬플 때나 기쁠때나 최선을 다해 표현할 줄 아는 내가 좋다.


자취 8년차가 된 지금, 전보다 감정에 솔직해졌는가 묻는다면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하다. 여전히 가족들에겐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해야 맞는 건가?

혼자서는 슬픈 드라마 장면을 보면 휴지 한 통을 다 써버리면서, 본가에서 엄마아빠와 같이 보면 어쩐지 눈물이 나질 않는다. 눈물을 참는 게 아니라 그냥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어쩌다 나에게 일어난 안 좋은 일들을 말하게 돼도 습기는 쏙 빼고 아주 건조하게 말하거나 유쾌하게 각색하여 말한다.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만 울어봐서 누군가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아직도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또.. 음, 자취방에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면 급하게 청소하고 매무새를 다듬는 거랑 비슷하다고나 해야할까? 아무리 지금은 야생화로 살고 있다 한들, 아끼던 꽃이 밖에서 꼬질꼬질해진 모습을 좋아할 부모는 없을테니까. 근데 그래도 20년을 정성으로 돌봐서 그런지 엄마는 다 알더라.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어떤 감정을 숨기고 있는지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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