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와 아메리카노

by 류서윤

요즘 우리 남편의 최대 고민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다.


바로, 탈! 모!


'탈모'라는 단어에도 눈썹이 꿈틀거릴 정도다.


“머리 다 빠지면, 절대 밖에 안 나갈 거야.”


진지하게 선언하는 남편 옆에서
딸아이가 자연도감 책을 들고 온다.


“이 독수리 이름이... 대머리독수리야?”


순식간에 남편의 얼굴이 구겨진다.

미간에 주름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입꼬리는 남태평양 바다처럼 가라앉는다.


우하하하하.

딸아이는 바로 그 표정을 기다렸다는 듯,
하루 종일 아빠 놀리기에 푹 빠져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엔 탈모는 아직 ‘초입’ 정도.

굳이 이름 붙이자면

풍성했던 시절의 추억을 회상 중인

중년의 '정수리’ 정도랄까.


그런데도, 비 맞는 건 세상 제일 싫단다.

대머리 독수리 될까 봐.


얼마 전,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예고 없이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군고구마 맛이 나는 작은 카페를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차 안에서 외쳤다.


“자기야! 저기 커피 좀... 테이크아웃~!”


남편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더니,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를 가르며 전장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그는 온몸에 비를 맞은 채
커피 두 잔을 비닐봉지 하나에 감싸 안고 돌아왔다.


그 비닐봉지 하나로
세상의 모든 비를 막아내려는 듯,
커피는 마른 채로, 그는 젖은 채로,

그렇게 차로 돌아왔다.


비는 그의 머리에 내렸고, 사랑은 내 손에 전해졌다.


달큰한 군고구마맛 아메리카노 한 잔.


비의 전장을 뚫고 온 따뜻한 한 사람의 진심이

여기에 있다.


나는 지금
군고구마처럼 따뜻하고,
비닐봉지처럼 실용적인,
그리고 탈모에 진심인 한 사람과 산다.


그게 꽤 괜찮다.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