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져도, 다시

by 류서윤

캠퍼스 안에 숨은 작은 쉼터, 청운지.


얼마 전, 그곳에서 두 마리의 오리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열심히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따뜻한 풍경이었다.


오늘 다시 찾아간 청운지에는

그 알에서 막 깨어난 듯한 아기 한 마리가 더해져 있었다.


이제 셋이 된 오리가족은

꽁꽁 언 호수 위를 분주히 오가며

부리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를 낮춰 발밑의 얼음을 톡톡,

쉼 없이 부리로 쪼아댄다.

얼음이 갈라진 틈사이로 고개를 푹 집어넣고는

차가운 물을 마시며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어 물고기를 찾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귀엽던지.


그러는 찰나, 호숫가로 산책하던 강아지 한 마리가

셋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 쪼르르 달려왔다.


놀란 오리들은 뒤뚱뒤뚱 달아나다

그만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한참을 멀찍이 도망친 끝에

강아지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자

조심스럽게 힐끔 돌아보던 셋은

얼음을 쪼고, 물을 마시며,

또다시 먹이를 찾기 시작했다.


함께 부리를 맞대고 얼음을 깨는 모습,

작은 고개를 넣어 물속을 들여다보는 모습,

그리고 뒤뚱거리며 얼음 위를 나란히 걷는

오리 궁둥이들까지.


한없이 귀엽고, 정겹고,

왠지 모르게 든든한 풍경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셋의 모습이 꼭 우리 가족 같다.


무슨 일이든 자신만만하던 내가

아프고 난 후로는 낯도 많이 가리고,

조심스러워진 것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셋이 함께라면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도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오리들의 걸음에서 희미하게 용기를 얻었다.


사람이 만든 인공 호수라

불편할 법도 한데,

청운지의 오리가족은

이곳에 계절을 나고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한겨울의 호수,

그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작고 따뜻한 생명들의 발걸음이


오늘은 유난히

든든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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