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은 공백으로 남았다.
무균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온 날,
늘 한 줄이라도 채우던 일기는
숨을 죽인 채 비어 있었다.
그 빈칸을 오래 바라보다가
나는 색연필을 들어 무지개를 그려 넣었다.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오후,
창밖에는 무지개가 선명하게 걸려 있었다.
그 빛의 다리가 나를 향해 속삭였다.
“지금은 기적의 순간이야.
그리고 그 기적은 계속되어야 해.”
그날 밤, 나는 거대한 무덤을 꿈속에서 보았다.
산처럼 솟아오른 흙더미 위,
묘비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숨이 턱 막혔지만, 오래 두려움에 잠기지 않았다.
어쩌면 그 무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묻는 자리가 아니라,
다시 피어나기 위해 나를 품어주는 흙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알았다.
무덤 위에도 무지개는 뜰 수 있다는 것을.
죽음과 삶, 두려움과 희망이
같은 하늘 아래 나란히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나는 그날의 무지개와 무덤을 함께 떠올린다.
빛과 흙이 포개진 그 장면이
내 안의 불안을 다독인다.
결국, 무지개를 기적으로 여긴 것도,
무덤을 품으로 느낀 것도
모두 나의 해석이었다.
그 목소리가 내 안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기적은 네가 선택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