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세상은 낯설고 멀었다.
응급실의 천장은 형광빛으로 반짝였고, 그 빛은 내 머릿속 빈칸 위로 쏟아졌다.
방금 전까지의 나를 이루던 조각들이 흩어져,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른 채 사라진 듯했다.
잠시의 공백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틈이, 내 삶의 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처음 혈액투석을 받았던 그 병원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지역이 달라졌고, 마음도 멀어졌다.
그곳은 내 몸에서 삶을 빼앗아 가는 기계음과, 다시 살게 해주는 차가운 바늘이 공존하던 곳이었다.
굳이 돌아갈 이유를 찾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병문안이라는 명목으로 그 병원 문을 열었다.
낯선 복도와 낡은 안내판이 나를 맞았다.
하지만 한 걸음, 또 한 걸음 들어갈수록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조용히 눈을 떴다.
기계가 내 피를 통과시키던 날의 차가운 냄새,
창가 쪽에 앉아 있던 나보다 나이 많은 환자들의 고요한 시선,
간호사가 내 팔에 붙인 거즈 위로 번져오던 묘한 안도감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오래된 필름을 돌리듯 내 앞에 되살아났다.
나는 그때의 나를 보았다.
숨을 참으며 바늘을 기다리던 얼굴,
‘오늘만 지나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입술,
그리고 병실 창밖으로 보이던 흐린 하늘.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오늘의 내가 조용히 다가가 그 손을 꼭 잡았다.
병원을 나서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곳을 떠난 게 아니라, 잠시 멀리 서 있었던 거였다.
시간이 나를 멀리 데려갔지만, 기억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기억과 내가 다시 만났다.
그 만남은 슬프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고맙고, 조금은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