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해야 할 우리의 일상을 생각하며
나는 '안녕'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이 말엔 사전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공존한다.
1.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하다
2.친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인사로 하는 말
살아가면서 ‘안녕’이란 단어가 크게 가슴에 와닿았던 순간들이 있다. 안녕하지 못하다 외치는 누군가의 절절한 호소에 함께 슬펐고 분노했던 때가 있었다. 대개는 나와 내 주변의 안녕을 기원하는 게 우선이 될 수밖에 없어 애써 모른척 눈 감아 온 이웃의 고통에 공감했고 미안했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한편으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나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살아 온 나의 현실은 안녕한걸까 되짚어 봤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1. 청년세대에게 묻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한창 대학가에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하는 자보가 크게 유행했었다. 최초로 붙었던 자보는 코레일 노조의 파업 문제, 부정선거 의혹, 밀양 송전탑 문제 등 여러가지 사회갈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 때와 비교해 오랜기간 대학가에서 현실문제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며 각자의 밥그릇을 챙기기에 바빴던 탓이다. 그런데 어느 고려대 학생이 붙였던 그 대자보는 또래의 대학생들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각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안녕들하십니까 자보 내용 중 일부>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97~98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중략)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당시 청년세대의 불안감과 좌절감을 그대로 드러낸 내용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미 '포기가 쉬운 세대'라며 기성세대들의 조소를 받았던 터였다. 하지만 '청춘이라 괜찮다'는 말에 속아 부당한 현실과 불편한 진실에 침묵해야 했던 나와 청년세대는 함께 분노했다. 결국 이런 움직임이 SNS를 통해 확산되었고 더 많은 학생들이 이에 화답해 연쇄적으로 글을 올리며 대대적인 사회 이슈가 되었다.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자보 내용 중 일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피로 세운 민주주의가 이리도 쉽게 무너지는 것에 억장이 무너지는듯 해 안녕 못합니다. 어떤 유명하신 분들은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과 비양심, 도덕과 비도덕,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어떤 정치관을 갖는 것모다 상식으로 판단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양심'이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2013년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안녕하십니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공정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비리에 눈감아 온 사회에 대한 고발. 하지만 문제 고발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제 힘을 잃어버린 현실과 막혀 있는 소통 창구에 좌절했던 사람들. 우리 모두 정말 '안녕한 게 맞느냐'는 그 물음은 당시 내게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의 불행 앞에서 나 혼자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왜 연대할 힘을 잃고 각개전투를 벌이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내 앞에 던져졌다.
이 자보와 관련해서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응원의 메시지가 전달됐다. 어떤 이는 고통을 나몰라라 해서 미안하며 고개 숙이기도 했고 그 어떤 정치적 구호보다도 더 절절히 다가온다는 평도 있었다. 대부분 청년층에서 던진 메시지에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한편으로 당시 나라의 수장이었던 전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경고'로 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에도 박 전 대통령은 위기에 놓인 청년세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제 아무리 취업절벽에 시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 그들이 행복한 미래를 꿈꿀 권리를 박탈당하고 게으르다는 사회적 낙인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특정 계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나서주는 용기있는 어른은 없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청년 세대의 현실은 '안녕하지 못한' 것 같다. 아래의 기사는 여전히 '취업절벽'에 내몰린 젊은 세대들의 힘겨운 사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례없는 전염병이 창궐함에 따라 일부 업계의 경우 심한 불황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을까 하는 고민이 더 해지는 요즘엔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언젠간 흔히 묻는 안부인사처럼
서로가 안녕한 날이 오게 될까?
*읽을 거리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357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