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해야 할 우리의 일상을 생각하며
#2. 노동자로서 우리의 삶은 안녕한가
고인이 된 노회찬 전 의원이 남긴 유명한 연설문이 있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기에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문이다. 이는 서울시 시내버스인 6411번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명명할 이름도 없이 '아줌마', '아저씨'라고 지칭되는 이름 모를 우리 이웃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있음으로 하여 제공되는 일상적 편의를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중 일부는 그들과 비슷하게 '투명인간'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단 그렇지않다 하더라도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에 소소한 행복이 깃들 수 있다. 당연한 듯 제자리에서 제 할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이 유지된다. 이것이 바로 부조리함에 등 돌린 뒤편에 당연한 권리를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고 노회찬 의원의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 중 일부>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들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한명이 어쩌다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다 투명인간입니다.
편법 등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빠르게 부의 사다리를 오를 수 없는 세상. 가족들과의 안락한 삶을 꿈 꾸기에 고용은 불안하고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오르는 냉혹한 현실. 각자가 처한 현실도 '투명인간' 취급받는 이들 못지 않게 측은하기에 나무랄 수 없지만 적어도 남의 고통에 조소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품어 줄 여력이 없었기에 세상이 너무 경쟁을 부추긴 탓이기 때문이니.
요 며칠 새 제정 막바지에 이르러 크게 논란이 일고 있는 법이 있다.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그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을 뿐인데 미비한 안전장치 때문에 스러져 간 사람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지 않도록 사회가 안전을 강제하도록 한 법이다. 하지만 원안과 달리 처벌 대상과 범위, 처벌 수준, 적용 시기 등이 입법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며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과잉입법이라고 불합리함을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자의 안전한 작업환경과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건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언론보도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진 이후였다. 그 시발점이 된 사건은 2016년도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사고로 인해 본격적으로 법 개정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게 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소위 '김용균법'으로 지칭되는 이유다.
그 전부터 이미 많은 현장의 노동자들은 시간과 비용에 쫓기는 현실에서 제 생명을 담보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했으며 관리자에게 주어진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약했던 탓에 안타까운 죽음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런 현실을 반성하고자 했다. 가장 큰 골자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안전조치와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경우를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사고의 책임을 개인이 아니라 사업주나 경영진에 돌리는 것이다. 그 세부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의 입장은 이러하다. 잠정합의안에 공무원과 경영 책임자의 처벌을 규정한 조항 등이 빠진게 문제라는 것이다. 강력한 처벌조항을 통해 사고 방지의 의무를 강화하고자 했던 원안의 내용이 삭제된 데에 대해 그들은 "우리는 죽음에 등급을 매기고 기업과 공무원의 책임에 면죄부를 준 1월 6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의 잠정합의안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그 밖에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이 배제되는 점이라든가 경영책임자 의무조항에서 발주처의 공사기간 단축 및 일터 괴롭힘 등의 의무가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영계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더해 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별법을 제정함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입법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 제정 후 사고나면 범죄인이 되는데 살아남을 기업과 CEO가 없을 것" 이라며 모든 인력을 관리감독할 수 없는 현실에서 중소기업의 사업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최대한의 노력을 했으나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사고현장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규정을 마련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탄식부터 어떻게 기업활동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호소까지 각계의 다른 입장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진통 끝에 법안은 이미 국회의 법사위를 통과 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부족하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앞으로 계속 보완·개선해 가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물론 제정될 특별법이 노동자의 안전을 담보할 첫 걸음임에 분명하지만 적용된 현실에서 가혹한 처벌이 될지 미약한 보호책이 될지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 과연 이 법안이 또 다른 희생양이 탄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그 귀추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관련 분야에 조사 및 관리감독의 업무를 수행할 일선의 공무원으로서 법안제정이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위한 진일보한 걸음으로써 제 역할을 다 하길 바라고 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767
*대문 사진 출처: http://mediask.co.kr/35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