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시대의 새로운 사회문제 톺아보기
작년 말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에선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일각에서는 백신 접종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해 줄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7개국은 지난 12월 27일부터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미국 화이자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동시 접종을 실시 중이다. 이 백신은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담긴 ‘메신저 리보핵산’ (mRNA) 활용한 의약품으로 이를 상용화해 인간에게 실제 투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한 발 늦게 정부에서 백신 확보를 위한 총력전에 기울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유럽권 국가에선 백신에 대한 저항감이 크다는 소식 또한 전해졌다.
뉴스에 인용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 의료진들조차도 백신의 부작용을 우려해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노인요양시설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2000명 중 76%가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비슷한 시기 백신 접종을 시작한 미국도 최대 비영리 민간건강단체인 ‘카이저가족재단’ 소속 보건 싱크탱크의 조사에서 의료기관 종사자 중 29%가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같은 의료진들의 백신 회의론은 일반인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일 에르푸르트 대학이 실시한 백신 수용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6%만이 접종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조사(79%) 대비 약 20%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실제로 접종이 시작된 이후 접종자에게 나타난 부작용에 대해서 지속적인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백신의 위험성이나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는 것보다 당장 정상화를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인식 아래 현재 질병취약층과 의료진을 중심으로 백신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커지는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자동차 사고가 날 확률보다 낮다며 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프랑스에선 코로나 백신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유럽 국가 중에서 프랑스의 접종 속도가 유독 더디다고 한다. 프랑스 시민들은 여론조사회사 오독사의 지난해 12월 22, 23일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58%가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다.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타 국과와 비교해 팽배한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 분석한 뉴스는 두 가지 이유를 꼽았는데 그 첫째는 접종 절차가 복잡하고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면 우선 주치의를 만나 진찰을 받아야 한다. 또 45쪽 분량의 접종 지침서를 읽은 후 접종에 동의해야 한다. 치매 등으로 본인의 판단이 어려운 고령자는 가족 동의까지 필요하다. AFP통신에 따르면 백신 접종 시 이런 절차를 거치는 EU 회원국은 프랑스가 유일하다. 또한 영국 독일 등은 전문센터를 미리 마련한 반면 프랑스는 기존 병원에서 주로 접종이 진행돼 인력 시설 등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주사 1대를 맞기 위해 최소 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잦다 보니 번거로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한 전문가는 '과도한 관료주의가 불러온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이유로 에마뉘엘 마크롱 정권의 백신 정책이 오락가락한데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점도 작용한다. 지난해 12월 초만 해도 백신 접종을 개인의 의사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던 것과 달리 신규 확진자가 급증한 같은 달 22일에는 백신 접종 확인증이나 음성 판명 증명서가 있어야만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일명 '백신 강제법'을 도입하려 해 상당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최근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코로나 19 방역 실패, 제약사의 백신 임상시험 축소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홀드업(Hold Up)’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접종 독려에도 접종 지연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자 결국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백신 접종이 부당하게 지연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면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안전한 방법과 적절한 순서에 따라 백신을 원하는 모든 프랑스인이 맞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세계의 일부지만
‘백신 디바이드 시대’가 코앞까지 와 있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프랑스 정부가 작년 말 백신 접종 여부에 따른 대중교통 이용제한 관련 법안 초안을 공개해 큰 논란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백신 접종을 거부한 사람들의 명단을 유럽연합(EU) 회원국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해 프랑스 극우정당연합 대변인은 마크롱 정부가 '보건 독재'를 계획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비단 정부 차원의 구분책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백신 여권'과 '백신 앱'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의 비영리단체 코먼스 프로젝트와 세계경제포럼(WEF)은 ‘코먼 트러스트 네트워크’라는 백신 여권 사업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세계 주요 항공사들이 이 사업에 참여했다. IBM도 코로나19 진단 여부와 체온, 백신 접종 기록 등의 정보를 담은 ‘디지털 헬스 패스’라는 앱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백신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등하는 ‘백신 디바이드 시대’는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백신 디바이드란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 간 발생하는 사회적 격차를 의미한다. “당신은 코로나19 백신을 맞았습니까?” 라는 질문이 향후 많은 사람들의 인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문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신 접종자에 대한 특별 대우는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 '백신 접종 여부'가 일상의 또 다른 기준이 되는 경우 새로운 양극화가 진행될 확률이 높다. 백신 여권 등이 통행증처럼 사용될 경우 개인에게 보장되었던 자유는 국가주의 정책 앞에서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이런 점을 우려한 독일의 일부 정당들은 이에 맞선 차별금지법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사회민주당(SPD) 원내대변인은 “백신 접종자를 기업에서 차등 대우하는 것을 막는 법제화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기독사회당(CSU) 법무대변인도 “사회생활에 접종여부가 직결되는 것이 크게 우려된다”며 “음식점이나 영화관, 양로원 등에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을 거부한다면 백신 접종이 사실상 의무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권에서 일반인들의 백신에 대한 저항감은 아직까지도 상당하다. 기존의 전염병 관련 백신과 달리 단 몇 개월 만에 긴급승인을 받아 보급되는 탓에 안전성이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신 접종의 득실에서 아직까지 득이 더 많다고 판단하기에 접종세가 꺾이지 않겠지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거부하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과 관련한 논란 역시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백신을 둘러 싼 사회적 갈등은 곧 미래 우리 사회에도 던져질 문제일 수 있다. '백신 여권'과 그에 따른 차별 역시 우리도 고민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시대에 이르러 우리나라 사람들의 차별에 대한 민감도가 상승했다고 한다. 경기 회복과 국민 건강에 직결된 문제인만큼 백신 접종은 중요한 과제이나 동시에 사회적 차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차별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이미 작년 상반기에 코로나 관련 인종차별 유튜브 영상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발원한 바이러스라는 사실 때문에 유럽권 국가에서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인종차별 관련 위협이 증가했다. 전염병 확산을 계기로 유럽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인종차별 의식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재차 반복될 위험은 높다. 이미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는 유럽권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또 다시 차별적 발언을 일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백신 접종 시기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늦어진 만큼 국가 간 경제적 격차 역시 불가피해 보인다. 사회 시스템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감염수가 줄어들거나 백신 접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아직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추었고 개인의 삶이 불안정한 사각지대에 놓인 만큼 다른 국가의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을 고민해야 할 때다.
*글 작성 시 인용, 참고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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