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무정한 현실에 짓밟혀도 생존을 위해 나는 오늘도 버틴다
*본 글에는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내용에 대한 줄거리(결말 포함)가 들어 있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본 예링이 한 말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도 침해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권리 위에 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보장해달라 외치기 힘든 세상이다.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내가 일할 자리'는 쉽게 마련되지 않는다. 이미 더 좋은 인재들이 나보다 한 발 앞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태되어 떠밀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야하는 세상의 '을'들은 오늘도 부당함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제헌국회 때부터 서양의 법제를 받아들여 근로기준법 등 법안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노동자들이 법이 정한 최저의 기준조차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건 고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 이후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업주는 그들의 횡포를 눈 감아주었던 부패한 공무원들과 결탁해 노동자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제 권익이 침해되고 있는 지에 대해 무지했던 동안 사업주들은 노동력을 착취한 이익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 결국 착취과 잘못된 관행을 견디다 못해 일부 노동자들이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며 오랜 문제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갑과 을'은 불평등한 관계다.
'갑'과 '을'이라는 단어는 근로계약서에 등장하는 지칭어로 각 '사용자'와 '근로자'를 의미한다. 근로계약서는 '기본적으로 갑과 을이라는 대등한 자 간에 체결되는 노동에 대한 사용계약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갑과 을'이라고 표상되는 노사관계가 대등한 관계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노동조건 및 임금결정에 대한 주도적 권한이 대부분 사측에 있어 양자 간 가지고 있는 정보량의 차이가 존재하는 데다가 일자리에 대한 수요 대비 공급이 제한적이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쉽게 개선될 여지가 없다.
특히 몇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시장 내 근로조건 등의 격차는 심화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저임금 및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들이 많아졌다. 즉 정규직보단 비정규직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회의 문 역시 너무나 좁아졌다. 모두가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 수는 한정적인 데다가, 각 기업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인건비 절감 등의 사유로 채용 규모마저 줄어들고 있다. 결국 시간·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경제 하위계층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저임금의 고용조건이 열악한 2차 노동시장 일자리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게 계층의 피라미드는 개인의 사회계층 이동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한편 불법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근로자들이 권리침해에 대하여 법과 제도에 호소하고 있다.
제법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사업주와의 갈등은 끊임없다. 그런데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사업주의 부당한 업무지시에도 그저 침묵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사업주의 갑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는 무지해서라기보다 보복 등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재판 등 법이 정한 절차를 밟는 동안에도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처지에 놓인 탓에 차라리 원만하게 합의를 하는 일이 가장 빠르게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또한 법적 분쟁 끝에 승소한다 해도 상처뿐인 영광인 경우가 많다. 실익이 적은 반면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에도 회사와 싸우기보다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생존하는 다른 길을 택한다. 생계유지가 급선무인 사람들에게, 빚을 갚아야 하고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는 이상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여자의 작은 책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을 잃어버린 마냥 어둠 속에 우두커니 있던 그 책상은 바로 주인공 정은(유다인 분). 열심히 공부한 끝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으며 나름대로 승승장구 있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화상에서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회사 내부비리에 관련한 일에 연루되면서 고발자로 낙인이 찍혀 회사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존경해 마지 않았던 그의 선배는 함께 일에 휘말렸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자살 혹은 타살인지 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 속에 생략되어 있었다.)
곧 정장 차림의 여자가 인적이 드문 시골 어느 산 속에 자리한 허름한 사무실 앞에 도착한다. 바로 원청 소속이던 제 자신이 근무할 새로운 장소, 하청 업체의 사무실이었다. 당장 그녀를 해고하려던 회사는 그녀가 나가지 못하겠다고 버티자 결국 1년 동안 하청 업체 직원으로 파견근무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이미 원래의 제 자리를 잃고 벽 앞에 둔 책상에서 하루종일을 버티던 그녀는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낯선 이들과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정은이 하청업체 소장에게 다짜꼬짜 가서 자신은 여기 파견된 원청 소속 근로자고 1년 간 이곳에서 일할 것이라 통보한다. 소장은 가녀리고 물집 하나 없는 깨끗한 손을 가진 그녀를 쓱 훑어보곤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어 여기는 그녀가 있을 곳이 아니니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이미 물러설 곳 없이 벼랑 끝에 내몰린 그녀의 사정을 모르는 소장과 직원들에게 그녀의 등장은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여긴 땅값이 싸고 물가도 싼 만큼 사람 값도 싼 곳이에요. 박 대리님(정은) 같은 분은 여기 안 어울려요." , "창창한 거, 희망이에요."
소장은 거듭해서 일을 달라거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정은을 제지했다. 소장에게 정은은 아무 일도 시킬 수 없는 골칫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구분되는 층위의 사람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설득이 정은에게 먹히지 않았다. 그녀에게 파견근무는 회사에서 짤리지 않을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한편 하청 업체는 송전탑의 보수·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현장에 직접 나가 몸으로 해야하는 일이었다.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정은에게는 낯선 근무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과 섞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발령 초기에는 정장차림을 고수하고 작업일지를 작성하라는 등 직원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자신이 나머지 노동자들의 지위와 구분되는 위치에 놓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위 '뼈 빠지게 공부해서 들어온 나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은 너희들은 다르다'는 식의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자만심이었다.
처음 맞닥뜨린 위계질서가 부재한 사무실 풍경이 정은에겐 상당히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간의 관계에 친밀함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게 대부분인데, 그 곳에선 나이를 불문하고 작업자들 간의 의사소통이 상당히 자유로웠다. 나이와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같은 '동료'의 지위에 있는 만큼 평등한 관계였다.
한편 계속해서 그들의 삶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던 그녀는 시골로 쫓겨온 뒤로 매일 같이 안주도 없이 소주팩을 들이켜고 있었다. 사무실 동료이자 편의점 알바생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쭉 지켜 본 막내(오정세 분)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막내: 언제 떠나실 건데요?
정은: ...지금 떠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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