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을 때의 마음가짐 pt.1

행복을 잊지 않는 삶의 자세에 대해

by 흔한여신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열두 개로 갈린 조각난 골목길 어딜 가면 너를 다시 만날까.


한껏 들떠 기분이 하늘 위로 솟구치는 날 듣곤하는 아이유의 '분홍신'. 잠시 길을 잃었더라도 앞으로 가야할 길을 찾아나서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 씩씩한 노랫말이 인상적인 곡이다. 춤을 춰야만 할 것 같은 경쾌한 리듬도 매력적이다. 이 노래가 힘이 되어줬던 건 내가 아직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다. 진로를 정하지도 못했고 삶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도 못해 방황하던 시절 나는 이 노래를 위안 삼아 지냈다.


이십대의 풋풋함이 있기 보다 남과의 비교 앞에서 한껏 초라해진 스스로에 대해 씁쓸함을 느끼던 때. 때묻지 않은 웃음을 깔깔거리지 못하고 축 처진 어깨로 잘 그려지지 않는 나의 미래를 고민하던 때. 삶이 던져준 숙제에 계속 오답만 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했던 그 때. 이 노래의 가사가, 경쾌한 리듬이 지쳐 있던 내 몸을 들썩이게 했었다. 그 때에 나는 작은 일에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곤 했는데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별 시답지 않은 고민같은 건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처 한국경제


갓 성인이 된 나이, 내 머릿 속은 온통 부정적인 생각 투성이였다.


나 같은 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 못하고 나보다 잘난 사람은 세상에 무수히 많으며 그런 내 삶은 그들의 삶과 비교해 보잘것 없다는 식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잘난 사람들 틈에 인정도 받지 못하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삶이라면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밝은 얼굴로 저들끼리 모여 하하호호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 나는 늘 어두운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었다. 홀로 한숨 짓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말 없이 지내는 내가 남들이 보기에 볼썽사나워보였던 것 같다. 나를 향해 대놓고 눈을 흘기는 친구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주눅들어 있었던 데다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 등록금이며 용돈이며 스스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노력 없이는 사소한 웃음조차 지을 수가 없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란 게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주린 배를 달래려면 삼각김밥 먹을 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남들이 노는데 정신 팔린 동안 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집에 돌아와선 방 안에 틀어박혀 쉬곤 했다. 항상 누군가와의 깊이 있는 대화에 목말랐지만 그러기엔 내 마음이 너무 조급했고 가까스로 얻은 것도 한순간에 잃게 될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소소한 행복조차 금방 깨어져 버릴까
늘 불안해했다.


결국 혼자가 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만의 성벽 안에 갇혀 살았다. 남에게 내 속마음을 터놓는 게 내겐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나는 외로이 지내왔다. 하지만 남과 무언가를 주고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채로 나이가 들게 되었다. 때문에 남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상처도 많이 생겼다. 타인의 말과 행동이 내게로 와닿는 일이 꽤 낯선 일이라 작은 반응에도 크게 마음이 동요했던 것이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며 아예 무시해버릴 수 있었던 때와 달리 남들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했던 적이 많았다. 제 아무리 의미를 곱씹어본들 남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잠들기 전까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다.


출처 픽사베이


잔뜩 움츠러 든 내 어깨를 펴게 만든 건 작은 관심이었다.


그저 존재만으로 나를 사랑스럽다고 여겨준 마음들이 나를 새롭게 일깨웠다. 변화의 계기를 만난 건 첫 번째로 휴학 때였다. 당시 나는 잠시 학교를 떠나있기로 결심하고 행정보조로 공공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한창 크레용팝 노래가 인기를 끌던 때였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삶은 학생 입장에서 꽤 설레는 일이었다. 남들과 비슷해 보이는 내 모습에 왠지 안도감이 느껴졌다. 잠시 소속이 바뀌며 내 주변 풍경도 달라졌다. 한강을 오가는 출퇴근길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 사이의 내 자리. 임시이긴 하지만 일정 공간에 내 소유의 물건들이 생긴다는 건 작은 기쁨이었다.


여전히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해 괴로웠던 시기였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점점 잡념을 지울 수 있었다. 그저 오늘 점심은 뭘 먹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해야지 하는 등의 생각이 부정적인 사고를 대체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 자리를 정돈하고 할 일을 해치우는 일상. 부지런히 그날 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레 나쁜 생각들도 머릿 속에서 쓸려 나갔다. 게다가 아직 어린 학생이라고 윗 분들도 공연히 더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런 새로운 하루가 쌓이고 쌓여 내 모습도 점차 변해갔다. 모자란 것 투성이로만 보였던 내 자신도, 나를 둘러싼 환경도 색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깨달았던 건 생각보다 하루에 웃을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 전엔 시시콜콜한 얘기가 시간낭비라고 여겼는데 그 어떤 일이나 공부보다도 가장 재밌는 게 이러쿵저러쿵 수다떠는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 알게 된 것은 살아가면서 남에게 감사할 일이 참 많더라는 것이다. 혼자서만 애써서 겨우 먹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나를 뒷받침 해주는 사람들도 사건들도 있었다. 모르는 새 남의 덕을 보기도 했다. 나는 혼자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더 의미를 가지는 순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이 내게 준 건 풀지 못 할 숙제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행복도 선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 틈에서 잠시 월급쟁이인냥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꾸미면서 나는 알을 깨고 나왔다. 지금의 내 MBTI 유형, 'ENFP'로서의 나를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 나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남이 가진 매력은 부러운듯 쳐다보곤 했지만 내가 가진 장점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밝고 명랑한 모습이 있다는 사실은 낯설지만 무척 가슴 뛰는 일이었다. 우중충하기만 했던 내게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이었다. 미래의 삶의 향방에 대한 고민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 실마리를 찾았던 셈이었다. 그 때의 깨달음 뒤로 점차 나는 가야할 방향을 찾아갔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출처 원더풀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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