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을 때의 마음가짐 pt.2

시련이 나를 덮칠 때 이겨내는 방법

by 흔한여신
프리다 칼로, 인생의 고난에 대한 새로운 시각


상황이 비극을 만드는 걸까 아니면 태도가 비극을 만드는 걸까. 인생은 통제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사실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주 일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한 개인의 인생이 비극으로 보이느냐 희극으로 보이느냐는 그 인생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내게 주어지는 것들은 바꿀 수 없지만,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바꿀 수 있다.

난 슬픔을 익사시키려 했는데 이 나쁜 녀석들이 수영하는 법을 배웠어. 지금은 괜찮아, 이 좋은 느낌에 압도당했거든. - 프리다 칼로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 그녀는 열일곱 살에 당한 교통사고로 평생을 하반신 마비라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몸을 꿈쩍할 수 없이 누워만 지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병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다시 무언갈 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을 깨우친 그녀는 결국 자신에게 닥친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후대에 그 이름을 남겼다. 뒷걸음질치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그녀의 모습과 그녀가 남긴 말은 슬픔에 가득차 있던 내게 큰 희망을 주었다.


세간의 동정을 받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가혹하다며 저주하고 원망하기보다 세상의 중심에 자신을 놓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사랑하며 살아간 프리다 칼로처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빛낼 줄 알았던 그녀의 삶처럼. 발을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발이 왜 필요하지? 내게는 날개가 있는데." 라는 말을 남겼던 것처럼. 지금의 불행이 내 삶의 모든 걸 좌지우지 할 것이란 생각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죽음이 내 앞을 가로 막은 게 아닌데, 뭐가 그렇게 절망스러우랴. 신체적 고통이 나를 휘감은 게 아닌데, 뭐가 그렇게 원망스러우랴. 그래서 나는 스스로 더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하기로 했다. 그 모든 노력이 정말 행복한 결말을 맺을 지는 알 수 없지만.


I hope the exit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 프리다 칼로





그녀의 삶이 그러하였듯, 삶은 대체로 시련을 더 많이 던져준 게 사실이다.


되는 일보다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았다. 남들에겐 행운이 곧잘 따르는 것 같은데 나는 체감상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입술이 다 부르트도록 공부해도 시험은 번번이 낙방을 했고 원하는 쪽으로는 일이 풀리지 않다가 엉뚱하게 다른 쪽에서 일이 풀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많은 실패를 겪으며 수없이 마음이 심란해졌지만 그 때마다 내 안에 깨어난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이전엔 자각도 하지 못했던 '긍정의 힘'이다. 잘 될거라는 혹은 괜찮다는 위로 없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이 에너지가 주효했다. 불안함이 극에 달하는 순간에도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역경을 극복해왔다.

그런데 현재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주변을 둘러싼 또 다른 사람들이 내게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나는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그 동안 나만의 답을 잘 찾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다 오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들의 모습에 비추어봤을 때 내가 살아온 방식이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재발견한 이후로 몇 년째 유지해 온 삶의 가치관이 뒤흔들렸고 내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폭발해버렸다. 불안함에 널뛰는 마음이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진심을 다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 모든 게 사실 내 편향된 기준에 불과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나는 헛된 망상에 빠져 있는거나 다름없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중요한 가치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면 지금 나는 남들보다 더 잘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니 실패한 거나 매한가지였다. 그런 생각이 다시 꼬리를 무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고 마음 속엔 거센 불길이 일었다. 지난 날의 내 행동에 대해 분노가 치민 뒤에는 끝없는 우울과 절망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왜 그들처럼 더 철저히 내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토록 미련했는가 하는 후회가 나를 나락으로 이끌었다.


'나는 틀렸다'는 절망이 지독한 슬픔을 불러왔다.


출처 민중의 소리


최근 들어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한 건 '행복'에 관한 것들이었다.


웃음과 감사함을 잃어버린 삶에, 허겁지겁 남들 뒤를 쫓아 일확천금의 횡재만을 기다리는 마음에 과연 행복이 들어 있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행복하지 않다는 건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몇 달 째 나를 괴롭혀 온 생각들 때문에 내가 가진 긍정의 힘 또한 바닥이 나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치다 못해 바닥을 치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차려졌다. '이대로 가면 모든 게 정말 엉망이 되어 버린다'는 위기의식에서 스스로를 구해내야 했다. 구원자를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절대자 혹은 타인으로 삼아 버리면 내 희망도 그에 묶여 버린다. 결국 모든 건 오롯이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 종종 타인의 해석이 내 의도와 달랐을 때 우리는 스스로가 내린 정의를 의심한다. 하지만 내 삶의 주인이 나이기에 남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답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태해지거나 지금 해야하는 것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이 병든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나의 마음과 생각을 바꿔나가고 있다.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우고 있고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삶들과의 비교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남들 뒤를 쫓으며 허둥지둥 사느니,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맞춰 원하는 삶을 살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손에 꼭 쥐고 놓치지 않으려 했던 사소한 욕심들에서 자유로워졌다. 예컨대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넘치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구 등 나를 갉아먹고 있던 생각들이 사라졌다. 인생의 결말이 당장 일이년 내로 정해지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달라질 게 없다고 푸념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나는 매순간 결정에 앞서 그것이 곧 불행을 야기하지 않을지, 나의 행복을 위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택지였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물론 때로는 섣부른 판단으로 오답을 내기도 하겠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곤 나다움을 잃은 결정을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지금까지 경험해온 것을 되짚어 보자면 꼭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좋은 것 같아보여도 의뭉스러운 점이 있다거나 불편한 점이 눈에 밟히기도 했고,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사람의 다른 면모에 감동받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의 잣대로만 보기엔, 단순히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적어도 오래도록 곁에 둘 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최근에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하고 느꼈던 짧은 대화를 소개한다.


A: 너 크로플 먹을래? 어떻게 할까?
나: 음.. 그냥 마음대로 해.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B: 야 저 말은 먹고 싶다는 거다. 빨리 크로플 시켜.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헤아려주는 건 엄청난 배려심이다. 퉁명스러운 듯한 말투에 배어있는 상냥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알아도 모른체하거나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런 중에도 조금이나마 나를 챙겨주려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했던 순간이다. 요즘 내 주변엔 남의 것 중에 제게 득이 될 게 있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네 것 중에 뭐 좋은 거 없느냐'며 장난 삼아서라도 뭔가를 빼앗는 사람보다는 '네 것을 잘 지키고 있으라'며 조언해 주는 사람이 나는 필요하다. 그런 다정함이 조금 많이 그리운 요즘이다.


photo by. Jun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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