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의 오아시스

군중 속의 고요를 함께 느끼는 순간

by 흔한여신
매일 옥상엘 간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은 막혀있지만 그 한 층 아래인 맨 꼭대기층에 널따란 카페가 있다. 음료를 판매하는 상업시설은 아니고 카페테리아처럼 꾸며놓은 휴식 공간이다. 나름 그럴싸해 보이는 가구들이 놓여 있고, 통창으로 되어 있는 유리 너머 탁 트인 도시 전경이 보인다. 창 너머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눈 오는 날이면 하얗게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른 점심 때 가면 고요함만이 가득해 바람을 직접 쐬지 않아도 숨이 탁 트이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적막이 주는 아늑함에 반해 매일같이 그 곳을 찾고 있다. 딱딱한 사무공간을 벗어나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작은 오아시스다.


그곳에 가면 종종 만나는 사람이 있다. 약속을 정하고 오는 것은 아니지만 금방 서로를 알아 본다. 그녀와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각자의 자리에 앉아 고개를 잠시 묻고 있거나 멍을 때리거나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피곤함으로 얼룩진 얼굴엔 어떠한 표정도 담겨 있지 않고 서로 다정히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가장 여유롭고 평화로운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것을. 떠들썩한 공간에서 벗어나 오롯이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사무실에 오면 숨이 턱턱 막힌다.


저 빌딩숲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설렜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자리가 가장 외지고 구석진 어딘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이 지겹고 사람이 지겨운 탓이다. 직장인으로서 당연히 견뎌야 할 삶의 무게려니 생각은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힘든 코로나 시기를 버텨내며 온갖 것들에 정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생한 보람은 마땅한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의 장애물을 넘으면 더 큰 장애물이 또 나타나곤 했다. 지금까지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마음 속이 착잡해질 때마다 '도망치고 싶다'고 되뇌곤 한다.


내 또래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대다수는 사무실에서 말 할 일이 매우 적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말하랴 바쁘다. 동료들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방문 또는 유선 상담 문의에 응대하느라 입을 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민원 업무 때문에 재택근무도 어렵다. 물론 여느 사기업처럼 성과 혹은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은 적다. 하지만 잠깐의 부재만으로 부재중 전화가 몇 십 통이 찍히는 건 분명 무언의 압박이 된다. 오늘도 나는 쉴 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리고 말았다.


일에 치이는만큼 짧은 휴식시간은 무척 소중했다. 전에는 무조건 회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서 점심시간이면 가능한 한 멀리 산책을 나가곤 했다. 날이 좋을 때에는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주변 공원을 몇 바퀴 돌곤 했다. 같이 밥먹고 수다 떨 이가 있던 때에는 눈물 쏙 뺄 만큼 크게 웃다가 들어오기도 했다. 지루하고 고된 일상의 작은 행복 같은 거였다. 그런 지금은 바깥 날씨가 너무 춥고 같이 웃고 떠들 이가 없다. 그렇게 회사 주변을 배회하다가 발견한 오아시스가 바로 맨 꼭대기층의 카페테리아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혼자만의 세상으로 떠난 듯한 착각에 빠질만큼 고요한 곳, 잠시 이런저런 생각들을 내려두고 쉬어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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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옥상에 갔고 저 건너편에 그녀를 만났다.


교대로 식사를 하는 까닭에 남들보다 이른 점심식사를 마치고 들어선 나만의 작은 오아시스. 12시 무렵엔 다들 식사하러 나가기 바빠 이 휴식공간을 찾는 이가 없다. 그 때를 틈타 잠시 턱 막혔던 숨을 몰아쉬었다. 한 손에는 사무실에서 내려온 캡슐커피 한 잔과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소파 자리에 철푸덕 앉았다. 조금 있으니 종종 만나는 그녀 역시 어느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우리 둘은 여느 때와 같이 소리 없이 앉아 저 건너편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한참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묻고 잠시 눈을 감았다.


모든 걱정과 고민을 수면 아래로 떨어뜨린 채 짧은 오후시간의 여유를 누렸다. 창문 너머로 스미는 햇살이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 위로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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