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변신 프로젝트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작년 말부터 나는 부모님댁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 위함이 아니라 케케묵은 때들을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해결사를 자처하게 된 것은 자취 생활의 짬이 조금 차면서 정리하고 치우는 데 자신이 생겼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다. 미처 살피지 못했던 집 안을 자세히 둘러보니 구석구석 쌓여 있는 짐들 가운데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잘 쓰지도 않으면서 방치된 것들이 8할은 됐다. 오랜 세월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버려야할 것들 다시 보관이 필요한 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다 보니 어느 새 집안에 다시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저 버려야 할 것들이 눈에 띄어서, 지저분한 것들이 꼴보기 싫어서 시작한 일이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변화의 바람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던 해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살 것이란 생각이 굳건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을 하도 많이 듣고 자라서인지 겪어보진 않았지만 머리 아플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도 있지만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싶기도 했고 혼자서 밥 해먹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싶단 생각이 강해졌다. 좀 더 어릴 때만 해도 타인의 호의에 기대어 지내는 게 맘 편한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엔 아는 지식도 전무했고 수중에 갖고 있던 돈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곧 기회가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지역으로 근무지 발령이 났고 마침 관사에 빈 자리가 하나 있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독립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회사 근처의 '숙소'가 생겼다는 생각이 강했다. 기거하고 생활한다는 느낌보다는 잠만 자러 오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더 넓고 쾌적한 환경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집이 주는 여유로움과 안락함은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던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당장은 불만스러운 게 너무 많았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도 기쁨과 행복이 있었다.
다만 그걸 내가 외면하고 몰라봤을 뿐이었다.
처음 독립했을 때만 해도 살림이 처음이라 어설펐다. 끊임없이 유투브를 보면서 남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지를 구경했고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없었던 요리도 밀키트를 이것저것 사면서 하다 보니 조금씩 발전이란 걸 했다. 몰랐는데 재능이 아주 없는 젬병은 아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만 해도 집에선 죽은 듯이 누워있는 게 일상이었다. 집안에서 뭔갈 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고 바깥 세상이 훨씬 재밌게 느껴졌다. 그런 내 방은 안식처였다기보다 잠시 머무르는 숙소에 가까웠다. 좁은 방에 짐까지 가득 들어차 있어서 여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더 답답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랬던 내가 로봇청소기까지 사면서 바닥 청소에 심혈을 기울이고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매일 구석구석을 닦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
방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엉망이었고 심리적으로도 늘 불안한 상태였던 내가 비로소 안정을 찾고 나니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바로 부모님댁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그냥 몇몇 더러운 구석이 눈에 밟혀서였다. 해묵은 때를 박박 문질러 닦고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엄마는 맥시멀리스트였다. 홈쇼핑이나 대형마트에서 조금 싸거나 세일한다 싶으면 족족 물건을 사서 쟁여두는 스타일이었다. 정리에도 솜씨가 부족해 쌓아두는 것도 일정치 않았다. 때문에 부엌엔 주방용품과 무관한 것들이 다채롭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옷방엔 비슷한 모양의 옷들이 즐비했다. 엄마는 내가 버리는 것마다 아깝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버리고 비울수록 깔끔해지는 공간을 보며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이사온 뒤로 10년이란 세월이 흐를 동안 집안엔 먼지와 더불어 상처가 쌓여 있었다. 그런 집에서는 아무리 쉬어도 왠지 모르게 고달픈 심정이었고 그걸 잘 알았던 나는 엄마에게 새 물건을 들일 때가 됐다고 얘기했다. 10년 혹은 20년도 더 된 가구들과 작별할 때가 되었노라고 거듭 주장했다. 덧붙여 내가 쓰던 방도 이제 아빠만의 공간으로 꾸밀 것을 제안했다. 작은 부분부터 청소와 정리를 통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했던 부모님은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그건 사실 정말 부모님에게서 독립하겠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두 분의 내일이 조금 더 반짝임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었다.
공간에 어울리고 사용자가 편하게 쓸 수 있을 법한 제품을 찾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렇게 2월부터 나는 내 이사를 마치고 난 뒤 부모님댁 변신 프로젝트에 곧바로 착수했다. 공간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일은 꽤 힘이 들긴 했지만 즐거웠다. 물론 부모님댁에 가면 곳곳을 쓸고 닦아야 하다보니 많이 피곤해지긴 했다. 하지만 곳곳에 패인 상처가 있는 낡고 무거운 가구들에 작별을 고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새로운 것들로 채워진 공간을 보며 설레기도 했다. 트렌디하고 예쁜 가구들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을 보면서 얽혀 있던 안 좋은 과거의 기억마저 날아가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부모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 것 같았다.
진흙탕 같았다.
내가 있는 현실은 온통 뻘밭이라 발을 빼려해도 쉽게 빠지지 않는 수렁 같았다. 애써 한 발을 뺐더라도 금세 고꾸라져 버리곤 했다. 멀리 도망치려고 해봐도 발목을 붙잡고 있는 진흙더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안에 깨알같이 진주가 숨어있었던 것 같다. 보지 않으려 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일 뿐. 물론 알맹이는 남들에 비해 보잘 것 없이 작고 덜 반짝일지언정 나만의 보석이 숨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걸 깨닫고 난 뒤로 조금 숨통이 트인 기분이다. 아직 완성이 되기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나만의 바다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려고 한다.
길은 잘 모르지만 발걸음을 떼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