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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26. 2023

그놈의 가성비

숫자와 씨름하는 삶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



요즘엔 뭘 하든 고민을 엄청 한다.


  이게 얼마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통장 잔고가 넉넉지 않은 게 첫째 이유고 일과 후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인 게 둘째 이유다. 그래서 투자 대비 효율을 꼼꼼히 따져본다. 이걸 하는 데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그 결과로써 얻는 건 무엇인지, 정말 여기에 돈을 쓰는 게 맞는 일인지 고민해 본다. 그런데 실컷 고민하다 보면 왠지 서러워진다. 뭐 하나 사(하)면서 이렇게까지 신경 쓸 일인가. 하지만 월급은 그대로라 들어오는 수입은 늘 일정하고 나가는 지출은 점점 늘어간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소비' 앞에서 나는 늘 기가 죽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저렴한 것, 싸고 양이 많아 '가성비가 좋은 것'들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자꾸 그램당 얼마인지, 시간당 얼마인지 하는 숫자에 집착을 하고 있다. 


  어느 부자의 명언처럼 '자면서도 돈이 들어오는 삶'이어야 돈이 나를 좀 먹지 않을텐데, 그렇지 못한 관계로 항상 숫자에 기가 눌려 있다. 작고 소중한 월급을 조금이라도 지키려면 포기하는 것에 익숙한 삶이어야 한다. 하지만 종종 욕심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차가운 비 내리는 날엔 뜨끈한 국물 요리가 먹고 싶다. 그래서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2인분짜리를 시켜서 3번을 먹기로 한다. 이 정도면 꽤 가성비를 챙겼다 스스로를 위로한다. 회사에서 업무로 잔뜩 스트레스 받은 날엔 부드러운 선율에 젖어 있고 싶다. 각자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음악드는 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덜컥 학원비를 결제한다. 악기연주로 힐링을 하리라 생각하며. 값비싼 방법이긴 하지만 마음 속 화를 다스리는 데 꽤 효과가 좋은 편이다.


  또 어느 날엔 인터넷을 뒤지다가 매끈한 몸매의 트레이너가 올린 운동 영상을 본다. 그를 보다 문득 내려다 본 내 몸매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아직 젊은 나이에 이런 몰골로 살 수는 없지. 남들처럼 '바프'를 찍진 않겠지만 그래도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또 수업을 등록한다. 주 2회로는 운동량이 좀 부족하지. 주 3회로 수강료를 결제한다. 3개월 동안 아주 빡센 자기관리를 해보리라. 물론 결심 과정에서 다시 한번 횟수당 수강료, 시간당 수강료 따위를 고민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투자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그 모든 소비를 마친 뒤 가계부를 작성할 때면 한숨만 푹푹 나온다. 과연 내가 잘한짓인가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쓸데없이 과욕을 부린 게 아닌가 고민할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 왜 내 월급은 이토록 쥐꼬리만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통장에 찍힌 숫자는 곧 지금의 나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 같다. 


https://www.happierhuman.com/anxiety-quotes/


욕심을 비우는 게 맞을까, 아니면 틀릴까.


  더 나은 것에 대한 갈망은 보편적인 욕구일 것이다. 그게 물건이든 환경이든 직업이든 사람마다 중요한 기준이 다르겠지만. 하지만 절제되지 않은 욕망은 파멸을 불러오기 쉽다. 재정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결국 해를 끼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끝없는 욕심을 탓한다. 욕망이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넘치는 게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 본다. 어떤 이들에겐 아주 평범한 일상에 불과한 것이 누군가에겐 아주 값비싼 것이 된다. 같은 숫자가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지금 내 기준에선 '사치'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이걸 한 번 해볼까, 이걸 한 번 사볼까, 좋다는데. 건강이 염려되어서든 기분을 충족시켜줄 만한 경험이 고파서든 욕망하는 것들 앞두고 고민은 끊임없다. 


내가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상한선은 분명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그 숫자가 현재를 대변할 뿐 미래를 설명하진 않는다. 물론 현재의 시간과 금액이 모이고 모여 미래가 되긴 하지만 지금의 투자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숫자에 과몰입하다보면 그게 내 전부인마냥 단정짓게 된다. 왜 나는 남들처럼 빠른 속도로 자산가치를 불리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쌓여가는 잔고를 보면 속이 타고 갈증이 난다. 부자가 되진 않더라도 숫자에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소망도 같을 것이다. 매겨진 가격표에 뜨끔하지 않고 원하는 걸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를.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풍족한 이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가성비를 좇던 어느 날 힐링을 위해 소비를 하는 대신 유투브를 영상을 찾았다. 드넓은 초원 혹은 광활한 대지의 자연을 바라보면 조금 답답한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 관련 영상을 검색했다. 당장 바다를 보러 갈 여유가 없는 날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asmr로 대체한다. 완전히 갈증이 해소되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욕구를 채우기 나쁘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소비를 하게끔 만드는 광고가 얄밉기도 하다. 눈길을 끌고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각종 광고들. 거기에 속절없이 이끌리는 내가 문제인건지 과할 정도로 쏟아지는 각종 광고를 탓할 일인지 그 들뜬 마음을 채워줄 만한 두께의 지갑을 갖지 못한 걸 아쉬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나 자신과 타협을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제 다음을 기약하자고.


https://blog.speak.com/kr/in-english/expressions/


욕심이 나를 키우는 삶을 살고 싶다.


  욕심 때문에 더 성실하고 더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바라는 것들이 나의 원동력이 되어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욕망에 쫓겨 흥청망청 살다간 후회할 일이 많겠지만 한편으로 어떤 쓰임은 나에게 긍정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욕심을 버리고 싶지 않다. 현재의 나로 만족하고 지금의 위치에 머무르기엔 아직 너무 짧은 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무절제와 절제 그 사이에서 적당한 중심을 잡는 게 어렵다. 그래서 오늘도 가성비와 가심비 사이에서 고민한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을지 매 순간 헷갈린다. '적당함'이란 가장 어려운 선택인 것 같다. 치우치지 않는 중간의 삶, 욕심에 충실하면서도 충실하지 않는 삶. 앞으로의 내가 중심을 잘 잡아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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