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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r 16. 2024

나의 이사 이야기 1/2

마음의 안정을 찾기까지

이사를 마무리 지었다


  안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 동안의 소회를 밝히자면 하루하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안산에서 지내는 동안 가벼운 우울증을 앓았다. 경증의 우울감은 누구나 다 가지고 사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밤이면 밀려드는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힘들었다. 마음의 빈 공간이 그 무엇으로도 달래지지 않을 때마다 음식을 먹었다. 그래서 안산을 떠나기 전까지 배달앱에 지출된 돈이 적지 않다. 다행히 먹은 만큼 운동을 했기에 살이 찌진 않았지만 안산에서의 삶은 늘 허기짐의 연속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고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외로움은 질병이라는 말이 정말 사실이었다. 그래서 서울행이 결정됐을 때부터 너무 행복했다. 물론 마냥 기분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에게 감사하다 빌었다.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독립할 집을 구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관사에서 산 것은 자력으로 한 독립생활이 아니었다 보니 살림만 할 줄 알았지 다른 지식은 전무했다. 더군다나 TV에서는 연일 전세사기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인사이동까지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라 시간적인 여유는 없었던 데다가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악조건이 아닐까 싶을만큼 막막했었다. 괜히 서울가겠다고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고 관련 정책이나 법령 같은 것을 뒤져보면서 차근차근 정리하다보니 금세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왔다.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블로그 등지에 아낌없이 나눈 이들 덕분이었다.


  사전 준비작업을 꼼꼼히 했지만 그래도 실전은 달랐다. 막상 집을 보러다니려고 하는데 보여줄 집이 얼마 없다는 게 문제였다. 괜찮은 방들은 이미 나갔거나 계약을 연장해 빠진 방이 없었고 그나마 있는 방들은 상태가 좋지 않거나 너무 작았다. 처음엔 네이버에서 우수한 평점을 자랑하는 부동산들을 수소문했으나 막상 연락해보니 내가 원하는 조건의 방은 없단다. 비슷하게 있다 하더라도 아예 은행 대출이 거절될 우려가 있거나 보증보험 가입이 안되는 방이었다. 치밀하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발품을 팔면서 느낀 것은 언제든 전략을 수정하고 계획을 변경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인터넷의 정보들을 너무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완벽한 것은 그 자체로 흠일 수 있다.


Maskot / Getty Images


구로동에 온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회사에 긴 연차휴가를 내고 엄마랑 집을 보러간 날. 처음 시작은 영등포였다. 아는 사람들이 몇 있기도 했고 익숙한 동네라 영등포부터 찾았다. 몇 번의 퇴짜를 거듭하다가 겨우 방을 하나 봤는데 월세방인데다가 너무 작았다. 엄마는 회사가 너무 멀고 주변환경이 좋지 못한 것 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해야했는데 좀처럼 맘에 드는 조건의 방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 영등포를 떠나 대림역으로 갔다. 하지만 대림역 인근은 절대 살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회사 근처인 구로디지털단지역 방향으로 걸었다.


  그렇게 나는 도림천을 따라 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길을 잃어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원래 가려던 곳은 디지털단지 방향이었지만 신도림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때는 정신이 없어 길을 잃은지도 몰랐다. 평소 같았으면 지도 어플을 켜고 길을 찾았을 텐데 그 날따라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걷다 보니 학교가 보였고 오피스텔 단지가 있었다. 사실 오피스텔은 처음부터 아예 선택지에 없었다. 관리비가 너무 비싸다는 게 단점이라 썩 내키지 않았던 데다가 대부분이 5평 내외로 좁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지금 살고 있는 방은 오피스텔이고 방 평수는 만족스러울만큼 넓다. 처음 예상대로 된 게 거의 없다는 게 정말 놀랍다.


  오피스텔들이 많은 고대 구로병원 인근에서부터 부동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역시 조건이 맞거나 이사 일자가 맞는 방은 없었다. 아니 사실 방이 아예 없었다. 지쳐서 거의 포기할 무렵 어느 부동산에 들어갔는데 대번에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앉으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작은 위로라도 고맙게 느껴져 잠시 쉴 겸 부동산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급하게 방을 구하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저기를 빠르게 뒤져보더니 당장 나올 방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 길로 방을 보러 갔고 방 상태도 좋은데다가 평수도 넓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세를 올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적당히 타협만 됐더라면 계약을 했을 것이라 꽤 아쉬운 발걸음이었다.


  또 다시 울적한 기분으로 부동산을 나와 잠시 카페에 들렀다. 벌써 몇 번의 퇴짜를 맞았기에 기분은 영 아니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계획을 세워야 했다. 내가 새로운 관서로 이동해야 하는 날짜는 그 당시로부터 불과 2주일 여 전이었고 그 기간 안에 나갈 방을 구하긴 어려웠다. 결국 짐은 어딘가에 맡기고 부모님집에서 잠시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방을 구할 시간을 벌기로 결정하고 아까 갔던 부동산에 한 번 더 가봤다. 아무래도 소개해준 사람들이 좋아 믿고 맡기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런데 정말 하늘이 도우신 건지 마침 같은 오피스텔에 좀 전에 봤던 방 말고 다른 방이 있다고 했다. 내 조건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소개해주지 않으려다 다시 따져보니 서로가 조건이 맞는 방이라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부모님댁으로 가기 전 다시 한 번 부동산에 들렀다가 가계약을 하게 됐다.


정말 천운이었다.


https://www.flexjobs.com/blog/post/sideways-lateral-career-move-career/


계약일부터 입주까지 크고 작은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은행이었다. 평소 국민은행을 주거래로 쓴 데다가 부모님댁 근처의 지점에서 미리 대출 상담을 받아봤기에 대출이 무난히 승인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계약 당일 아침 대출 상담차 매물 근처의 국민은행을 들렀는데 생각보다 승인 가능한 한도가 적었다. 아주 터무니 없이 적었다. 충격적인 상담 결과에 너무 놀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껏 어두운 표정으로 은행을 나서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실행하려던 대출이 청년 대상 정책자금을 이용한 대출이라 금리도 낮고 한도도 유연하게 심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많이 봤기에 더 그랬다. 근처에 다른 은행을 가게 될 거라는 것은 계획에 없어 더욱 당황했다. 계약서를 쓰기로 한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 원하는 만큼 대출을 실행할 수가 없다면 계약을 포기해야하나 싶었다.


  나가버린 멘탈을 부여잡고 엄마와 다른 은행을 향했다. 구로구청에 안에 있는 신한은행이었다. 거래실적이 없어서 거절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어두운 표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채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담당자는 내가 가지고 온 재직증명서와 급여증빙서류를 쓱 보더니 필요한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 웃으며 하는 말에 어찌나 안도감이 들던지 사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생애 첫 계약이라 아침부터 한껏 긴장한 데다가 한 차례 대출 심사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들어 초조했던 상태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상담을 마치고 감사하단 인사를 뒤로 하고 다시 은행을 나섰다. 결국 잘 됐고 잘 끝났다. 처음부터 수월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과정이 어땠든 결과는 항상 기대 그 이상이었다.


낙담할 무렵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일들이 잘 해결되는 걸 보며 나는 다음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새로운 보금자리 by Ro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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