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쓰는 일기 _4

끄적이는 오늘의 생각,

by 흔한여신

오늘이 가기 전 급하게 남기는 쪽글이다.


오늘 하루는 사실 엉망이 될 거라 생각했다.


어제 한 머리가 자고 일어나니 더 부스스해진 걸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미용사가 마스크 속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구나 하는 생각에 괘씸했다. 그러면서도 물을 잔뜩 묻힌 손으로 컬을 잡아보려 애썼다.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머리은 왜 할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급하게 밥 몇 술을 허겁지겁 입에 넣고 외투를 입으며 뛰쳐나왔는데 애석하게도 눈 앞에서 버스가 제 갈길을 가버렸다. 다리를 휘청이며 뛰었는데도 버스는 이미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젠장. 이 버스를 놓쳤으니 다음 버스는 8분은 기다려야 온다. 아침에의 8분은 정말 황금같은 시간이라 지각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 되거나 앉아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잣대가 된다.

운 좋게 지하철을 탄다 해도 난 서서 갈게 분명했고 지하철을 못탄다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운명에 처했다. 버스를 더 빨리 오게 할 방법따위 없이 발만 동동 굴렀다.


다행히 지하철 1호선에 무사히 안착했다. 급행을 탔고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그 이후론 아무 일 없었다는듯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 뭉탱이는 비록 비현실적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쌓인 일을 거의 다 끝낸 일과였으니 나쁘지 않다.

그래서 내일은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을것 같다.

뭐든 시작하기 전보다 그러니깐 예상했던 것보단 나은 결과다.

너무 기대할 필요도 낙담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될 테니.


오늘도 웃음을 잃지 않은 하루였다.


불평과 불만으로 시작한 하루였지만 내내 힘든 일만 있지 않았다.

사실 웃을 일이 굳이 있으랴 싶지만 그럭저럭 하나의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결국 쌓여있던 할일을 거의 다 마무리 지었고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짐정리도 얼추 해놓았다. 처음엔 걱정이 앞서 언제 다하냐며 낙담을 했지만 결국 나는 잘 해냈다.


오늘은 처음 '복지리'를 먹었는데, 다들 내가 처음 먹는다니 옆에서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겁을 줬다. 이 사기꾼들. 아주 서로 합심해서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데 기가막힌 연기력에 거의 속아 넘어갈 뻔 했다. 혀가 마비되는 맛으로 먹는 거라고 했다. 그게 짜릿한 맛이라나. 그 맛에 중독되면 맨날 먹는 수도 있다고 했다. 거기에 덧붙여 능청스럽게 하는 말이, 먹으면서 찌릿한 느낌에 넘어서 혀가 무감각해지면 곧 쓰러질 수도 있으니 말하라고 했다. 놀려먹는데 재미들린 사람들이라 아주 연기력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더니 남아서 마저 짐정리하다가 웃음이 터진 나를 더러 얘가 복어 독에 중독되더니 이상해졌다며 혀를 끌끌 찼다. 물론 내가 허파에 바람 좀 들긴 했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역시 혼자 지내는 하루보단 나가서 부딪히는 하루가 더 사람답게 보내는 하루인것 같다.


오늘 점심에 먹은 재분소의 볶음밥, photo by. 흔한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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