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공시생 (3/7)

series: 혹독한 신고식

by 흔한여신
시작은 독학이었지만 끝은 공단기였다.


이미 당시에도 '공단기'가 대세였지만 나는 1타 강사를 좇기 보다는 선택과목에 맞는 강사를 골라야 했고 때문에 '윌비스'란 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이미 국어와 한국사 그리고 영어는 인강 없이 수험서만으로 독학을 하고 있었고 국제법, 국제정치 수업과 함께 헌법 수업을 실강으로 들었다.


나의 경우는 초중고 시절 어느 정도 공부를 했고 기본 베이스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독학으로 시작하는 게 수험생활의 지름길은 결코 아니라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경우 어느 정도 기본점수를 체득하고 스스로 기본기를 다지는 데는 도움이 많이 됐다. 혼자 공부하다보니 강사들의 필기노트가 수험서에 필기를 더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나만의 노트가 있었다. 이 노트가 수험생활의 장기전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에도 명부상실한 1타 강사인 이선재 쌤의 '선재국어'를 강의 없이 혼자 책으로 독학했는데 수험서의 해설이 자세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개인 차가 있을 수 있지만 회독 수를 늘리면 늘릴 수록 지난 회독 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게 이해가 됐다. 한국사의 경우 지금도 유명하디 유명한 전한길 쌤의 필기노트 하나만을 가지고 무작정 달달달 외우면서 공부를 했는데 장황한 해설과 문제가 있는 기본서 없이도 중요한 맥락을 훑고 빈출되는 개념을 숙지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영어의 경우 기출문제 위주로 학습하고 아무 강사의 책을 골라 단어와 숙어 암기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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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해도 뭣도 없이 그냥 무작정 머릿 속에 '때려 박는다'는 심정으로 임했다.


무식하게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합격하는 게 맞는 일이기에. 하지만 빡센 공부도 하루이틀이지 점점 지쳐갔다. 11월에 헌법 강의를 수강 할때 나는 매일 4시간씩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자습을 시작했다. 나만의 복습노트를 만들어 그 날 공부한 내용을 거의 암기하려고 노력했고 공부한 분량만큼 기출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공부하고 다른 과목 하나 정도 공부를 추가로 더 하면 금세 잘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 날 수업에도 졸지 않고 집중하려면 12시 전엔 자야했기에 늦게까지 무리하는 일 없이 깨어있는 시간 내 최대한 집중했다. 새벽까지 공부하기엔 내 체력이 부족했다.


내가 들었던 헌법 수업의 강사는 꽤나 독설가였다. 열심히 할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현강을 선택한 것이지만 유난히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열심히 하지 않고 빈둥대는 사람들도 많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요행을 바라거나 제 기대치만 높은 경우도 상당했다. 수험생활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기에 헛된 투자로 끝나지 않으려면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었다.


노량진에 오기 전의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 독설에 항상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라는 대로 따라갔다. 숙제든 복습이든 수업에 참여든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 달 전쯤 합격생 설명회에서 느꼈던 합격생과 나와의 괴리감을 떠올리며 나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수험생활은 혹독했다.


굳세어야만 고달픈 수험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느 날 수험생활이 얼마되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여기 생활은 너무 인권침해 같아요."

노량진 생활에 이미 물들어서일까 그 때는 그 말에 조용히 코웃음을쳤다. 공부하기 싫어서 대는 변명에 불과하다며 멍청한 소리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이 말이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줄은. 지금 그 남자 분은 공무원이 되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사실 그의 말마따나 많은 '인간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뛰어들어야 하는 수험생활이다.


마음이 온통 불안한 상태에서 멋모르고 달려 나가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내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가 항상 두려웠고 실패에 대한 책임 또한 걱정스러웠다. 합격의 벽은 너무 높아보였고 합격수기에 드러난 수험생들의 생활은 너무 완벽해 보여 기시감이 들었다. 예를 들어 어느 합격생을 수기에서 핸드폰을 아예 없애버렸다고 했고 어떤 수험생은 머리를 밀어버리는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저만의 해법으로 성공을 거두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합격을 위한 공식같이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남의 말에 흔들려 부화뇌동하기가 쉬웠다. 나 자신을 믿으라는 말이 가장 신뢰가 가지 않는 조언이었다.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갈대같았다, photo by. 흔한여신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어느 날 공부를 하는데 그날 배웠던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냥 외워야 했기에 무작정 외웠다. 입으로 중얼중얼, 필기를 깜지처럼 한 바닥 채워가며 억지로 머릿 속에 밀어넣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어서 전날 열심히 외웠던 게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까지 분명 고군분투하며 시험공부를 했는데 복습했던 내용이 드문드문 기억이 나질 않는 거다.


그 날은 주마다 한 번씩 있었던 쪽지시험 일이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재시생들 그러니깐 이미 1회독 이상 공부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시험 때에 공부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다니. 게다가 하필 강사가 그날 따라 시험 결과가 참담하다며 진도를 나가다 말고 독설을 퍼부었다.


비록 쪽지시험이긴 했지만 억울하고 서러운 심정에 어디에 토로할 곳을 찾진 못하고 혼자 수업 내내 구석에서 고개룰 푹 숙이고 울었다. 그것도 모라자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모자를 뒤집어 쓰곤 혼자 처량하게 울었다. 본격적으로 수험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도 채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난 처음 공부 시작하는 거니깐 잘 몰라도 괜찮다라고 다독이기엔 내가 두려움이 너무 가득했고 또 애썼던 지난 날들이 많이 고달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