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낼 수 없는 엄마의 지극한 정성
나는 아침밥을 챙겨 먹는 편이다.
사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가 힘들어 아침을 챙겨먹는 게 고역이었다. 학창 시절엔 야자(야간자율학습)에 학원까지 갔다와 녹초가 된 상태로 아침에 다시 눈 뜨는 게 참 힘들었다. 친구들 대부분이 일찌감치 등교하는 게 고단했던 탓에 아침을 잘 챙겨먹지 않았다. 대신 공복의 허기를 달랠 간단한 간식꾸러미를 가방 안에 쑤셔 넣고 와선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꺼내먹곤 했다. 그마저도 없으면 쉬는시간에 매점으로 질주를 해서 피자맛을 흉내낸 빵이나 우유 같은 걸 사와 버텼다.
그런데 나는 아침마다 꼬박꼬박 간단한 반찬에라도 따뜻한 밥 한 술을 뜨고 등교를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꾸역꾸역 밥알을 입 안에 밀어넣었다. 하지만 잘 먹었다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버스를 놓칠 새라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뛰어나가곤 했다. 눈도 채 뜨지 못하고 등교하는 딸래미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아침밥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에 무릎을 치셨던걸까. 어머니는 매일같이 내 아침밥을 챙겨주셨다. 몇 술의 아침밥 덕분에 남들보다는 간식 먹는 양이 덜했다.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로 한 동안 어머니는 더 이상 내 아침밥에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등교시간이 들쭉날쭉했기 때문이었고 스스로 챙길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수험생활을 다시 겪게 되면서 엄마는 다시 나를 위해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요일 빼곤 늘 학원에 나갔던 나때문에 엄마도 함께 강행군을 견뎌야 했다.
하루종일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키다가 점심시간엔 잠시 복도에 나와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먹었다. 차가운 복도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 앉아 정성이 가득담긴 따뜻한 반찬통을 열어보는 일은 하루의 몇 안되는 기쁨 중 하나였다. 엄마는 하루도 허투루 준비하는 일이 없었다. 영양소가 불균형할까 항상 과일까지 넉넉히 챙겨주셨다. 추운 복도에서 먹어야 하는 사정을 알았기에 항상 따뜻한 국을 챙겨주셨다. 만약 엄마의 도시락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랬어야 했을텐데 나는 따뜻한 반찬을 고루 먹으며 외로운 하루를 버티어 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엄마의 아침밥을 먹는다.
처음엔 엄마의 노고를 알기에 그냥 아침을 먹지 않고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생전 처음 집에서 25km 떨어져 있는 회사로 출퇴근하려니 입사한 지 처음 서너달 간은 살이 쭉쭉 빠졌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간식을 무더기로 사서 하루종일 먹었다. 수험생활로 거의 활동량이 없다시피하다가 급격하게 기초대사량이 늘어서인지 매일같이 간식을 끼고 살았다. 오죽 먹어댔으면 주변에서 느낀 내 첫인상이 '하루종일 뭘 먹는 애'였다. 지나가다가 또 간식을 까먹는 걸 본 팀장님이 적당히 먹으라는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아침밥을 먹지 않게 되면서 점심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허기진 속을 채우려 뭘 먹거나 배고픔을 모른척하며 오전시간을 보냈다. 결국 참다못해 아침에 식사대용으로 먹을 간식을 박스채 주문해 놓고 조금씩 먹었다. 종류는 다양했다. 컵스프, 초콜릿, 식빵, 파리바게트의 샌드위치 등등 취향에 맞게 양껏 먹었다. 그런데 늘 똑같은 맛이 나는 것들을 반복해서 먹다보니 어느 순간 물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견과류와 두유마저 질려버려 더 이상 간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부터는 다시 아침밥을 먹게 됐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아침잠이 워낙 많은 탓에 고양이 세수만하고 겨우 나가는 터라 매일같이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보다못한 엄마가 다시 아침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나는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국이 없으면 한참동안 반찬을 씹다가 몇 젓갈 못하고 일어난다. 때문에 항상 내 아침밥엔 국이 놓인다. 밥에 김치만 있다고 먹지도 않기 때문에 챙기기 까다롭다고 엄마가 불평을 하지만 그래도 빠짐없이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학창시절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나가기 바쁜 탓에 뒷정리도 엄마의 몫으로 남겨두고 떠나곤 한다. 엄마도 출근해야하는데 내 밥상을 차리고 치운 뒤에야 집 밖을 나선다. 가끔 출근을 늦게 하거나 쉬는 날을 제외하곤 엄마에게 쉬는 아침이 없다. 이처럼 나는 제 자신의 밥상을 챙기기도 벅찬 탓에 여전히 부모님 품에 기대는 게 많다. 그런데도 감사함을 자주 표현하지 못하는 못난 자식이다.
그런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침밥 차려주기 귀찮지?"
"당연한 걸 물어. 네가 해 봐. 매일 일찍일어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늙은 엄마를 부려먹어."
"그럼 나 아침 먹지 말까봐. 그냥 굶을게. 어때?"
"...그건 또 좀 그렇지."
"왜? 엄마가 힘들잖아."
"차려주기는 귀찮은데 굶는걸 보자니 또 짠하기도 하고..."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아침을 먹고 있다.
밥심으로, 엄마의 사랑으로 하루를 여전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