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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ug 24. 2019

부모는 가정의 설계자이며 건축가이다

가족해체란 말을 들으면....

#1.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때로는 큰 상처를 남긴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린 시절 가정 내에서 겪는 심리적인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받고 또 다른 상처를 자신의 가정에 남기는 이들도 많다. 우리 부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 과장하면 1년에 360일을 저녁마다 싸웠다. 밥상이 날아다녀서 저녁을 못 먹는 경우도 자주 있었고, 불똥이 아이들에게 튀어서 여러 번 대문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 마음에도 분노와 슬픔이 맺혔다. 왜 저렇게 살아야 하나. 좀 더 다정하게 살면 안 될까.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친구들과 만나는 저녁자리에서 아이들 교육문제와 부부 문제는 단골 주제다. 한 친구는 부부 사이에 아이들 학원문제와 학교 성적 얘기로 시작했다가 결국은 대판 큰 말다툼으로 끝난 적이 있다고 한다. 자기 주도형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인과 그래도 사교육에 맡기는 것이 더 낫다는 친구의 입장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부부는 이 문제로 갈등을 일으켜 몇 달 동안 관계가 소원해져 지금도 서먹서먹하다고 한다. 이들이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일까?     


  외벌이를 하는 한 친구는 자신의 부인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 큰 불만이 있었다. 아이들은 커가고 들어갈 돈의 용처는 늘어나는데 벌이는 시원찮으니 친구의 불만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이 부부는 이 문제로 많은 대화를 했으나 늘 대답은 한 가지였다고 한다. 돈은 남자가, 살림은 여자가 하여야 한다는 부인의 대답에 이들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현재 결혼 20년 차인 이 부부는 현재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고 부부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와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엄마의 갈등은 전적인 얘기 중 하나다. 이 와중에 직장에서의 승진 문제와 골프 때문에 거의 집에 없는 아빠의 얘기도 가정 내 갈등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엄마는 부엌과 거실에서, 아이는 자기 방과 스마트폰의 사이버 공간에서, 아빠는 사무실과 골프연습장에서 서로의 밤을 밝히고 있는 풍경은 결코 낯설지가 않다. 그냥 우리 주변의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의 모습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이 이상적인 틀에서 벗어나 기능적으로 표류하며 구성원이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가족해체"라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가 변화됨에 따른 자연스러운 사회적 문제일까? 아니면 각 가정 내 구성원이라는 개인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제3의 원인들이 개입된 복합적인 문제일까?(이런 고민은 논문의 주제다)




#2. 

  해체란 단어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참치(다랑어)다. 참치회집으로 배달된 대형 다랑어를 횟감으로 해체하는 작업은 장인에게는 자랑거리이며 고객에게 맛깔스러운 광경이다. 하지만 가족해체는 어떠한가.  가족해체란 말은 서늘하고 씁쓸하다. 가족과 해체는 결코 결부되어서는 안 되는 단어의 조합이어서 더욱 그렇다. 남녀가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서로 가족이 된다. 그 온전한 가족의 삶에 여러 사건과 사고와 갈등이 개입되면서 작은 틈을 만든다. 대부분의 틈은 일시적이거나 다시 봉합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어쩌다 더 큰 균열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이때 가족은 분열되고 해체된다.


  어느 소설가는 삶의 작은 틈과 균열에서 소설(이야기)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하나의 스토리가 거대한 사건이나 예측할 수 없는 반전 드라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작은 갈등이나 어떤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우리가 주의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지나치는 생활 속의 작은 흠집이 부정적인 결과물로 나타날 때 우리 가정의 이야기는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그것도 비극적인.   


  요즘은 예전에 비해 가정 내에서 길을 잃는 가족 구성원이 많다. 기존의 대가족제도나 상호부조가 가능한 조건하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던 상황이 가족제도의 변모와 함께 발생한다. 고도 산업사회도래하고 가족제도의 보편적인 형태가 깨어지면서 가정 내에도 경제적인 논리와 경쟁사회의 삭막함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더 힘든 세상살이와 거친 세월을 지나면서도 가정을 유지했던 부모세대에 비하면 지금의 가정 구성원들이 체질나 멘털이 약한 것일까? 부모세대보다 훨씬 더 정교해진 교육제도와 안정된 사회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자라난 이들이 마냥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뉴스나 주위를 돌아보면, 부모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정상적인 가정의 틀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이들이 있다. 그 이유는 사회경제적인 문제, 가족 간의 정서적 불일치, 가족의 역할 부족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아빠, 슈퍼맘으로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친 엄마,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 다른 누군가와 비교당하며 무시당하는 가족 모두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가족의 문제다.

      

  일본에서 ‘가족이라는 병(시모주 아키코 지음)’이라는 책이 큰 유행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로 다루고 있다. 사랑의 결합체라고 하는 가족이 때로는 가장 심한 고통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실증으로 밝히고 있다. 비단 일본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치부하기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우리 사회도 많은 가정이 ‘가족이라는 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3.

  가족이 원하지 않는 병적인 징후에서 멀어지려면 어떠해야 할까? 이 문제의 해답은 의외로(누구나 말할 수 있는) 간단하지 않을까(실행이 쉽지 않을 뿐). 가족의 구성원인 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역할 수행 과정을 통해 가정의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정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정의 구성원 중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부모는 가정을 꾸리는 첫 번째 구성원이며 설계자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만들어 나가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부모가 어떻게 설계를 하고 기초공사를 통해 튼튼한 뼈대를 세우는가가 그 뒤의 가정의 성패를 결정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가이다.     


  결혼식장에서 보면 주례 선생님이 신랑과 신부에게 묻는다. 서로 사랑하고 믿고 존경하면서 결혼생활을 할 거냐고. 대부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신혼여행부터 싸우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우리가 쌓아 올려야 할 가정의 기초에 대해 생각보다 무지하다. 특히 좋은 부모가 되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혹여나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를 증명할만한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 어쩌면, 그러한 방법을 배워야 할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이론적으로도 실행 가능성으로도 우리에게 쉬운 선택지가 하나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

    

  가정을 이루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스스로 던질 수 있는 질문 몇 가지. 


   "내가 바람직한(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가? 바람직한 부모의 자격조건에 부합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가? 또한,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가정 내에서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가? 사랑하는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좋은 배우자이자 부모인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가?"를 계속적으로 질문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부부가 함께, 때로는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얘기를 나눌 때 그 가족은 ‘가족이라는 병’의 바이러스로부터 면역력이 생기지 않을까? 이러한 면역체계가 자리 잡게 되면 나쁜 스토리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흔히들 문제 아이 뒤에 문제 부모가 있다고 한다. 부모의 상처가 아이에게 대물림이 되지 않도록 부모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가정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역할에 균형 잡힌 부모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성찰을 통해 좀 더 철(?)이 든 부모, 더 어른스러운 부모일수록 그 가정 내의 아이들은 상처 없이 잘 자란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지 않을까. 


부모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 또한 현재의 가정에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인가?


과연, 나는 가정의 설계자이자 건축가로서 자격이 있는 부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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