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시 40분에 먼저 건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누구랑 통화 중인 걸까? 5분 정도가 지나고 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는 긴장하면서... 무슨 말을 먼저 꺼낼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딸의 첫마디는 언니랑 저녁 먹으러 간다는 통화를 하고 식당이 있는 곳으로 이동 중이라는 얘기였다. 딸의 목소리 톤을 보니 적잖이 안심이 됐다.
"시험을 잘 봤느냐"라고묻지 않고 "고생했고, 편안하게 봤는지"를 물었다. 대뜸 딸은 전반적으로는 무난하게는 봤는데.... 수학이 어쩌고 국어가 저쩌고 하는 말을 했다. 물리적인 거리는 있지만 바로 앞에서 대화하는 것 같은 현장감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시험을 망치지는 않았다는 거다. 아빠 입장에서는 일단 안심이 되었다. 저녁은 집에서 피자에 맥주다..... 시원하게.
1985년 대입학력고사를 보던 날. 그날은 끔찍한 하루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날씨는 추웠고 마음은 더 떨렸다. 결과는 역시나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고민되는 하루였다(말도 안 되는 오버지만). 지금 다시 그날을 떠올려보면 웃음도 나오지만 그때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낮과 밤을 보냈다.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그랬을까. 아니면 시골 출신이 공부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까 봐 그랬을까. 아무튼 그날 마음속에 여유라고는 한조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멘털이 싸구려 와인잔 같은 고3에 불과했었던 겨울이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고 마음을 다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도 가져본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그런 면에서 수능이 끝난 딸의 태도는 대견했다. 언니랑 마라탕을 맛있게 먹고 카페까지 갔다온 딸의 홍조 띤 얼굴에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다시 맥주잔을 들었다. 딸은 이제 적성검사 준비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말을 담담하게 뱉어냈다. 엄마와 아빠는 말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공부에 별 욕심이 없었던 딸이라 내심 걱정은 많았었는데....
엄마도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라 그날의 경험을 뚜렷이 기억하며 있었다. 고3병으로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던 그날의 기억을. 자신감 부족이 가져온 선택들. 하지만 좀 더 살다 보니 그것 또한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음은 별론으로 하고, 당시는 힘들었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었다. 누구나 이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큰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고 그 압박감 때문에 시험을 망쳐버린 끔찍한 기억을.
다행히 딸의 얼굴과 말투에서 그런 흔적이 없어서 편안한 밤이 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쉬운 시험은 없다.
인생을 결정하는(혹은 결정할 것 같은) 시험은 준비과정도 힘들지만. 그 당일은 멘붕에 빠지기 십상이다.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오는 불필요한 긴장감은 글씨를 쓰거나 펜을 잡기도 어렵게 한다. 때문에 공부 실력 이외의 다른 변수가 당락을 결정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합격의 기대가 컸을 때보다는 그 기대를 내려놨을 때 오히려 결과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공부했던 기억이나 실력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나 시험 자체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편안함이 실수를 줄여주지 않았을까. 시험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실수는 그 유형도 헤아리기 힘들다. 개인한테는 비극이지만 타인들에게는 희극이 될 수 있는 게 흠이지만.
진정한 시험대박은 마음을 비우는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자신에 대해 지나친 기대도 부모에 대한 과도한 부담도 갖지 않을 때 시험에서나 시험 결과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한태도에서 결과도 좋을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 삶은 불안과 두려움 속의 그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지혜롭게 그것을 극복하거나 최소화시킨다. 그렇지 못한 누군가는 불안의 포로가 되어 자신을 망각해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는 화물선의 얘기를 알 것이다. 자신이 숨은 창고를 냉동실로 착각했던 어느 밀항자의 사인은 "저체온증"이었다. 하지만 그 배의 선원들은 얼어 죽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창고는 실제로 아주 따뜻했고 먹을게 풍부한 식료품 창고였던 까닭이었다. 밀항자가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음에도 자신 안의 공포가 스스로를 얼어 죽게 만든 것이다.
시험을 포함한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 상황이 주는 공포의 포로가 되어 버리면 간단한 인식능력이나 판단능력도 마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최소한 공포나 불안감의 포로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큰 시험을 앞두고 떨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불안감을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시험에 임할까의 문제다. 한때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황청심원이 유행했었다. 지금은 00 안정액 같은 약품도 팔리고 있다. 실제로 이들 약품이 어느 정도 효험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한 친구는 그걸 복용하고 너무 긴장이 안되어 졸다가 시험을 망친적도 있었다. 적당한 긴장감은 시험장에서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에.
주위를 보면 능력과 실력을 갖추었으면서도 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이들을 많이 본다. 단지 개인의 행운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시험을 대하느냐의 문제가 이들의 당락을 가르고 인생의 여정을 다르게 했던 것이다.
결국 실력과 더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수험 과정과 시험 당일의 멘털 무장이다.
"까짓 거 이 정도야. 아무려면 어때"
"할 만큼 했으니 하늘에 맡기자. 그리고 안되면 또 하지 머"
이런 마음가짐을 우리는 <멘탈갑>이라 부른다.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통틀어 볼 때 멘탈 갑처럼 가성비 높은 투자는 없다.그 어떤 사교육 시장의 일타강사나 족집게 과외선생도 수험생의 강한 멘털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 성공의 경험이 계속되는 인생살이의 여러 상황에서도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꼰대 소리를 들으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가끔씩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공부를 조금 못해도 괜찮다. 시험 준비가 부족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인생이고, 내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한다. 목표로 세운 것은 불가능의 순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말자"(포기는 김장할 때만 말하자)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의지가 꺾이는 것이다. 삶에 관한 동기부여를 스스로 하는 이들에게 의지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 자체보다는(사실은 이것이 더 중요하지만) 자신에 마음가짐에 더 관심을 갖도록 의미를 부여하면 어떨까. 지금은 공부에 관심이 덜하더라도 멘탈 관리를 잘해놓은 아이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떤 시험이든지 본인의 동기에 의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을 위한 좋은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본인의 멘탈에 달렸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멘탈갑들은 조용히 외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조용하게.... 언제든지."
이것처럼 값싸고 질 좋은 투자는 없다. 누가 머라 해도, 멘탈 갑의 무장은 인생 최고의 가성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