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성파파 Dec 18. 2019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었을까?

12월의 반성문

12월이 되면 누구든지 반성 모드를 장착한다. 약간의 후회와 적잖은 아쉬움은 필수옵션이다. 열두 장의 달력에 새겨진 시간의 기록들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고 그 의미를 새겨본다. 아뿔싸. 놓친 것들이 많아 보인다. 그 속에 잊힌 채 덩그러니 놓인 시간들의 잔해가 있다.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이의 뒷모습 같은....


술 한잔(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분노를 이 시의 모티브로 삶았다고 한다. 물론 한참 후에 어느 지면에서 그런 시간을 후회한다고 했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나와 내 인생의 객관화.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시적 허용이라는 영역에서나 가능할듯한 얘기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자신의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정호승 시인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은 "" 내 뜻대로 나아가지 않고, 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누구든지 자기 인생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살고 고민하고 고통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이 세상으로부터, 타인의 삶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쓰디쓴 소주잔을 붓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생의 결과에 의해 소외당하고 배반당하는 삶이 도처에 놓여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현실이다. 달콤했던 술자리의 뒤끝이 씁쓸한 것처럼.


그렇다고 우리의 삶 속에 그런 분노의 감정만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분노의 감정이나 고통 뒤에 오는 자기반성의 시간에서 비롯된다. 비록 신이 나를 시험하였거나 고난이 자신을 성장하게 하였을지라도...


해마다 12월이 되면. 내 삶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반성문을 써본다.


올 한 해도 지상의 짧은 삶을 잘 살아내었을까.

세상에 대하여 내가 해야 할 몫을 다하고 지나왔을까.

마땅한 의무를 핑계와 변명으로 회피하며 도망치지는 않았을까.


내 인생 속에 오롯이 내가 남을 수 있도록 나를 홀대하지 않고 존중하였을까.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줄려고 노력했을까.

나는 내 인생을 위해 꾸준히 술을 사고 위로하였을까.


크리스마스 캐럴 앞에 모두가 겸손해지는 시간. 우리를 아쉬움으로 뒤돌아보게 하는 시간. 타인의 안부와 건강이 궁금해지는 시간. 그럼에도 절제와 배려가 더더욱 필요한 시간. 나와 내 인생이 결국은 하나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시간.


눈꽃이 피고 지는 12월에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술잔 가득 술을 부어주리라. 못 마시는 이들에게는 사랑의  온기를 담아 따뜻한 차라도 따라주리라. 서로가 피었다 지는 꽃일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해서 서운함이 없게끔.


그렇다. 우리들의 인생은 우리를 위해 많은 술잔을 주었다. 그것도 분에 넘치게.



이전 01화 어머니는 부부싸움이 그립다고 말씀하신다. 가끔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