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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10. 2020

어머니는 부부싸움이 그립다고 말씀하신다. 가끔씩

세상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가기 싫은 군대에 막 입대한 신병일 때 그렇다(전역일자를 헤아려보면). 또한 현실의 괴로움이 하루와 멘탈을 어지럽힐 때도 그렇다(악몽 같은 하루는 언제 지나가나 생각하다 보면). 이 두 가지가 겹쳐질 때는 정말 답이 없다. 멘탈의 붕괴와 삶의 방향감각 상실이 두 눈을 뜨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이 두 가지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경우는 부모의 부부싸움이다. 자주 반복되는 부모의 다툼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공포 이상의 그 무엇을 자라나게 한다.


되돌아보면. 왜 그때는, 우리 부모들의 시대는 암울했을까...

물론 평화로운 시절이라 할지라도 불평불만이나 갈등이 없을 수는 없겠만. 부모들 갈등 상황이나 부부싸움을 보면... 꼭 저렇게 자식들 앞에서 싸울 필요가 있었을까.  저런 이유 같지도 않은 상황에서 감정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부부싸움의 역사도 돌고 도는지 똑같이 시답잖은 이유로 싸우는 자신을 보며 한심해한다.)


부부싸움처럼 사람을 허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당사자인 부부간은 물론  지켜보는 아이들까지... 외부인과의 관계에서는 아무런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 사안이나 상황도 부부 사이에서는 생사(?)를 건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만큼 접촉을 통한 친밀함의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 아닐까.


세상이 어둡고 암울했던 1970~80년대 우리 농촌사회에서 어느 부부가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살았을까. 경제적 성장기라고 할지라도 명암은 삶의 현장 곳곳에 존재했었다. 박스형 금성 TV에서 나오던 타잔과 전우, 수사반장 등 흑백이 분명했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깊고 추운 밤을 경험했던 부모들의 사랑은 어떠했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프로야구나 드라마의 제목만 바뀌어질 뿐 부모들의 주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었고 당면한 삶이었다. 몇 뙤기 안 되는 땅에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집들이 많았다. 가난한 부부들의 여정 또한 목가적이거나 낭만적인 차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부모들의 숙제였고, 자식들의 입에 먹을 것을 조달하는 것이 부모들의 의무였던 시대였다.


산다는 것이 먹고사는 것에 천착하다 보면 일 년의 농사와 하루의 먹거리만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는 이런저런  경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갈등이 많은 가정의 밥상과 저녁을 힘들게 했다. 술 취한 아버지와 하고픈 말이 많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이들은 부부싸움의 전형을 맛보았다. 실사판 <사랑과 전쟁> 거의 매일 눈앞에서 봐왔던 아이들. 실은 그 아이들이 살아온 시절도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어린 시절 수많은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보고 자랐다. 일 년에 300일 정도. 그때마다 네 아이의 눈빛은 불안한 별빛처럼 흔들렸다. 평화로운 며칠은 서로 피했거나 일방의 외출이 있었을 다. 그 당시 많은  집들이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집마다, 저녁마다 아우성이었다. 담 너머로 들리는 것들 중에는 웃음소리보다 욕설과 비난이 섞인 언쟁이 더 많았다. 지긋지긋한 칼로 물 베기란 부부싸움을 실천하고픈 욕망 때문이었는지 그 끝을 찾기 힘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부부의 갈등을 생각해보면. 인생에 깊이가 있고 철학적인 사유를 한다한들 그 싸움을 피할 수 있었을까? 더 나이가 들어 세월을 반추하고 아쉬워하는 성숙한 순간을 마주하면 다툼이 사라졌을까? 그때든 지금이든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끔씩 싸우지 않고 잘 살아가는 부모가 계신 집의 아이들이 부러웠다.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그런 좋은  부모를 만났을까...  일단 외형적으로는 그랬다. 물론 그런 집들의 속사정은 몰랐고, 실제는 전혀 다른 내피를 가졌을 수도 있다. 일상의 무관심이나 포기가 갈등 없는 평화를 불러온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부부간의 행복도 그 순위는 부부싸움의 빈도로 정할 일은 아니다.


지긋지긋했던 부부싸움을 해왔던 어머니가... 이제는 가끔씩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독백으로 말씀하신다. 그런 부부싸움이 이제는 그립다면서... 어쩌다 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우리는 시간과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시간의 기억 속에 새겨진 것 중에 어찌 좋은 것들만 있을까. 서투르고 어리석은 순간들마저도  인생의 시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 일터인데... 그런 까닭에 한때 진저리 났던 부부의 삶도 소중하게 소환되는 까닭 이리라. 상처만 남는 게 니라 그 시간 속을 버터 왔던 끈적한 미운 정이 남았을 것이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과거의 아웅다웅했던 부부싸움의 상황 자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지겹고 힘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순간마저도 소중했다는 사실을 불러왔을 것이고, 그런 뒤늦은 깨달음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데려왔을 것이다.


미운 정과 고운 정의 실체는 없을 터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둘러보면 혼자 남은듯한 서러움과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이 다가왔을 것이다. 사랑해서 그리운 건지 더 사랑하지 못해서 아쉬운 건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별빛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별빛이 더 많다.


산다는 것이 다 그런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진실을 외면한다. 당면한 현실의 고통이 큰 까닭에 순간의 진실을 그냥 지나치고 만다. 다시 이 순간을 생각하면 그리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만큼은 잊고 싶어 한다.  먼 훗날 다시 후회할 줄 알면서도...


누구나 세상을 떠난 배우자를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문득 부부싸움의 기억이 호출한 아버지의 모습은 또 다른 감정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어떤 순간이 보여준 진실은 오히려 우리의 삶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는 깨달음을 주지 않았을까.


세상살이의 갈등이 드리워진 시간이 희석되다 보면 숨겨져 있던 애틋함이 살아난다. 그때가 반드시 불행의 시간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낭만적 후회와 함께. 슬픔과 애잔함의 발신지가 때로는 그리움이 싹트는 주소일 수도 있겠다.


연인들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멸된 후에 남은 그리움은 지속될 수 있다.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도 사랑의 감정보다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더 깊게 실체를 드리우지 않았을까 싶다.


정작 시간이 약인 것일까. 지나고 나니 부정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잊혀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미스터리한 일이다.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어떤 순간의 일상이 시간이라는 묘약 때문에 미화되었을 수도 있다는 무의미한 의심을 해본다.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은 오래된 별빛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밤하늘의 별 무더기 속에 보이는 어떤 별빛이 오래전에 사라진 별로부터 오는 것처럼. 오래전에 소멸된 부부싸움에서 오는 어떤 감정이 현재에 미치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닌 가끔씩 밤하늘을 바라보시나 보다. 사라진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마음속의 어떤 별빛을 불러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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