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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Nov 24. 2020

돌아가신 부모의 생일을 기억하는 자식이 얼마나 있을까?

오래간만에 친구 한 명과 막내아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만추의 아차산은 붉게 물들어 스스로 취해있었다. 코로나 19 영향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실내 모임을 제한하니 산으로 공원으로 몰리는 일종의 풍선효과였다. 그래도 밀폐된 실내에서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아차산의 초입에 있는 험한 바위길을 걸어오를때 아들이 물었다.(이 바윗길은 아차산의 명물로서 많은 이들이 이 길을 통해 아차산 등산로를 탐방한다. 가끔은 이 길을 뛰어오르다 영혼 이탈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빠, 사람이 죽으면 생일은 어떻게 하는 거야?"

"예를 들어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 생신날은 어떻게 하지?"


잠시 동안, 아들이 물음이 무엇을 의미할까를 생각해봤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이 언제 인가도 떠올렸다.

"음.... 보통 돌아가신 분들의 생일은 잘 안 챙기지.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고, 생신은 알지만 그냥 지나가는 거지."


"그 이유는... 아빠 생각에는 생일은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의미인데, 돌아가신 분의 생일을 축하할 수는 없는 거니까. 돌아가신 날은 추모하고 기리는 날이라서 제삿날을 기억하는 것이고."


바위산을 오르면서도 아빠의 얘기를 듣던 아들이 거친 숨을 쉬면서 다시 한마디를 한다.

"나는 나중에 엄마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도 엄마 아빠 생일날이 돌아오면 꼭 기억할 거야. 엄마 아빠가 태어났으니까 우리가 있는 거잖아."(생일파티를 하겠다는 얘기지만,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아들의 뜻밖의 한마디에 아빠와 친구는 웃으면서도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초미세먼지가 눈가에 몰려왔는지 시야가 흐려졌다. 어느 순간 한강 건너편에 있는 롯데월드타워 2가 사라졌다. 애정이 담긴 말 한마디는 5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건물을 사라지게 하는 신기한 마술과 같다.


"아! 부모가 되는 것이 이런 거구나. 네 아이를 낳고 살아가면서도 어린 아들의 한마디에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떠난 날과 태어난 날>을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니. 그래서 아이들을 낳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구나."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어찌 됐건 우리의 삶의 흔적들이 아이들을 통해 계속 인간세상에 살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란 이런 고목같은 존재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오래된 기억(아차산 대성암 뜰의 고목). 대성암의 원래 이름은 범굴사로 신라 진덕여왕때 의상대사가 개창하였다고 한다.


100년 만의 거센 가을비에 낙엽이 속수무책이던 가을 저녁. 라디오에서 어떤 엄마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생일날. 세 아이를 두고 먼저 간 남편이 속하지만.... 아이들로부터 엄마에게 아빠의 생일을  기억하는 전화 한 통화도 없어서 서운하다는 얘기였다. 문득 아들이 산을 오르며 했던 얘기들이 오버랩되었다.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


젊어서 세상을 떠난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웠던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위해 세상을 살고 있을까?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이 그리운 건지 미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고인의 생일날 억수 같던 가을비처럼 정체모를 감정이 쏟아졌을 것이다. 가슴 한 곳이 비어있는 엄마에게 아이들의 따뜻한 전화가 그리웠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아빠의 기일을 기리기는 하겠지만, 엄마의 마음처럼 아빠의 생일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의 무심함이 낙엽에 몰아친 가을비처럼 엄마의 마음을 쓸쓸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타박할 수도 없다. 역시나 돌아가신 아빠의 생일을 축하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엄마의 마음속에는 기일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아빠를 추억하는 순간이 더 있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서운함에 안타까운 위로를 보낸다.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왔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언제 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자그만 교회당 ~~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정동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 교회당으로 직접 보면 간결하면서도 중후한 예술작품이다.)


아마도 부모가 걸었던 덕수궁 옆 정동길을 아이들도 걸을 테고. 평화와 소망의 눈이 내린 광화문의 저녁. 그때도 광화문연가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때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소중한 누군가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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