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와 카카오톡이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용등급과 신뢰등급은 어디에 속할까?

by 지성파파

부동산 광풍에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왔다.

지난가을의 얘기다.

재산이나 외형에 의해 평가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아주 오래전부터의 얘기다.


대출금액 제한에 따른 소문이 무성했다. 개인의 연봉 범위 내로 신용대출 상한액을 정한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연봉내역을 들여다보며 자존감 상승은커녕 자격지심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부동산 문제로부터 시작된 금리인상과 신용대출 간의 상관성은 "영끌과 빚투"의 시대에 초미의 관심대상이 되었다. 누군가의 생계나 자산증식 계획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조치이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귀를 열어두었다. 등기사항증명서에 자신이 소유권자로 기재되어 있는 이들도 집의 일부만 자신의 소유인 것은 웃지 못할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집을 가진 이들이나 못 가진 이들 모두 은행 문을 두드려야 하고, 미국 연방금리를 포함한 국내 은행의 이자율 변동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마이너스 대출의 한도를 증액하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에 놀랐다. 특히 개인의 신용등급과 점수를 기재하는 공란이 있어 나 자신의 신용점수가 궁금해졌다. 물론 은행에서 신용조사기관에 조회해서 개인에게 통지해주고 있지만. 그동안 그 존재와 등급에 관하여 무지했음은 자본주의적 감각이 없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돈에 대한 집착은커녕 관심이 부족한 것을 두고 시대적 감성이 부족하다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비교적 안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역설일지도 모르겠다.


대출 실행 과정에서 은행의 피드백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무슨 알고리즘인지는 모르겠지만 <카카오페이>는 관계기관에서 평가된 신용등급 점수가 변동되었음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었다. 1000점 만점에서 몇 점인지와 상위 몇% 인지, 동일 나이대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무슨 시험인가를 치르고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었다. 이는 예금과 대출, 신용카드 사용과 카드론 혹은 현금서비스, 각종 연체와 미납 기록이 한데 모여 하나의 점수로 산정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의 경제활동 전부를 아우른다고 하면 그 개념적 정의에 적합할 듯하다.


신용등급에 따른 각종 혜택이나 불이익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어떻게 자산 관리를 해왔는지에 따라 개인의 신용이 결정되는 걸 보면 막연하게나마 타인의 자본주의적 습성을 타박할 필요는 없겠다. "빚도 능력"이라는 얘기가 먼 나라의 소문일 줄 알았는데, 신용등급 산정하는 기준을 보면서 그 진실됨을 알 수 있었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위상에 따른 평가여서 경제시스템의 냉정함이 씁쓸하게 와닿았다.


결국 신용등급은 내가 어떻게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현재의 모습이다. 이는 경제적 상황뿐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서 살아온 궤적을 나타내는 지표일 수도 있다. 단순히 경제적 신용의 문제를 넘어서서 경제활동의 바람직함까지 평가하고 있다. 한 개인의 경제적 성취와 현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적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카카오페이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 신용조사기관에서 은행에 통지는 물론 카카오페이에도 알려주었다는 얘긴데... 그 진행 절차가 자못 궁금하긴 하다. 문제는 이와 관련된 각 기관들의 관심의 포커스다. 금융업무를 행하는 누군가의 자산관리를 응원하고 있을까. 아니면 기계적인 사명으로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을까. 이쯤에서 "이콘"(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준말, 넛지)의 자존감은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같았다.


그럼에도 열 일하고 있는 카카오페이의 빠른 전달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 시국에) 잘 살고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최근의 일이다.

(어떤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할까 고민 중이다. 아주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신용등급은 그렇다 치고 인간관계속에서 평가되는 신뢰의 정도는 어떠할 것인가. 한 개인이 가족을 포함한 주위로부터 받는 신뢰를 <신뢰등급 혹은 신뢰지수>이라 하면 ᆢ나 자신의 신뢰등급은 어떠할 것인가? 만약 10개의 등급이 있다면 나는 어느 숫자로 인식되고 있을 것인가. 무슨 내신성적 등급도 아니고 이 역시 개인이 평가된다는 측면에서 신용등급과 묘하게 닮아있다.(다만 신용등급은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평가되지만, 신뢰등급은 주관적인 요소에 의해 평가된다는 데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신뢰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통해 계량화할 수 있을까? 특히나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각종 정보화 도구를 통한 대화가 주종을 이룬다. 출처불명의 '언택트'가 대면접촉을 통한 친밀한 인간관계에 뜻밖의 상황을 제공하고 있다. 그 덕분에 대화채널 SNS인 카카오톡 이용 빈도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물론 다양한 대화채널이 존재하지만, 주로 카카오톡을 쓰고 있다 보니 이에 한정한다.)


카카오톡과 신뢰지수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카톡은 "서로 잘 살고 있냐"는 안부와 크고 작은 부탁, 서로의 만남 계획과 각종 공식적인 쓰임새까지 그 쓸모가 무궁무진하다. 하루의 시작을 카톡으로 열고 잠들기 직전까지 이를 확인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모티콘으로 전하는 말없는 대화도 재미가 쏠쏠하다. 말로 다하지 못한 부분을 이모티콘의 다양한 표정으로 의인화시키는 것도... 짧고 간결한 문장을 통한 대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환영받는다.


분명한 것은 대화하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가능한 한 얼굴을 보며 얘기하는 것이 좋겠지만, 카톡을 통해 경제적인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효율성 측면에서는 괜찮아 보인다. 각종 카톡용 문장, 이모티콘과 이모지, 다양한 사진을 통해 대면대화를 보완하고도 남음이 있다. 때로는 대면의 시공간적 제약이나 어색함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장점이다. 한편으로는 호흡이 짧은 만남이 계속적으로 이뤄져 오히려 친밀도가 증가하는 예상밖의 반전도 있다. 아무튼, 각자의 주관적인 방식대로 서로의 신뢰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갈 일이다.


다만 사적인 연결 아닌 접속을 거부하고픈 관계에서의 카톡대화는 공식적인 업무시간 내에서만 연결되어야 한다. 이제는 "연결을 거부할 권리"도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따라서 2차적 관계에서의 대화채널은 업무지원과 생산성 차원에 한해서 권장할만하다.(혹여나 카카오톡 시스템 개발자들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관계를 분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채널 개발도 고려해보시라. 전자의 경우 일정 시간 내에서만 대화가 가능토록 제한하고 그 외 시간에는 대화할 수 없는 시스템을....)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구들 간의 친밀도를 높여주는 카카오톡의 대화 기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소복히 눈이 내렸던 날 ᆢ아이들은 달빛 아래 썰매를 타고, 어른들은 저 희고 붉은 저녁 사이를 거닐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ᆢ

신용등급과 신뢰등급.

둘 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경제적 신용등급이 아무리 높다 해도 인간적 신뢰등급이 낮다면...

그때는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볼 일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외면한 채 외피의 성장에 집착했다는 반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경제적 신용도는 낮을지라도 인간적 신뢰도가 높다면...

가난한 날의 행복처럼 위안을 삼아도 될 듯싶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러하지 않을까.


살아가면 갈수록...

빛나는 삶보다는 따뜻한 삶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카톡 프로필 문구에 이렇게 새겼다.

"고요하되 깊이 생각하라. 자신의 삶이 명예로울 것이다."


아마도 어느 순간 카카오톡으로부터...

"당신의 신뢰등급이 변동되었습니다."라는 톡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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