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행복 모두를 갖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보편적이다. 우리가 가진 모순과 불합리는 이러한 평범해 보이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러한 욕망추구 과정을 피해갈수 없다는 것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다. 그래서 모두를 바란다고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
행운과 행복은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시공간에 존재한다. 반대로 불운과 불행 또한 모든 시공간에 함께 한다. 행운은 말 그대로 예상할 수 없는 얼굴을 갖고 있다. 누구나 꿈꿔보는 복권당첨이나 학수고대하던 시험합격은 극단적인 예시에 불과하다. 퇴근길 서쪽하늘에 펼쳐진 무지개나 격정적인 저녁놀, 한낮의 뭉게구름과 소나기 속에서도 어떤 비경과 특별한 감성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행운이다. 행운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의 결과일 수도 뜻밖의 선물일 수도 있겠다.
행운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모든 행복이 행운의 산물은 아니다. 양자는 겹치기도 하지만, 행운의 의외성 때문에 서로가 분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운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행복 또한 더 다양하면서도 섬세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행운이 우리를 향해 미소 지을 때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면 지나가는 바람이 되고 만다. 의지와 타이밍이 결합되지 않으면 행운은 그냥 지나치고 만다. 많은 이들의 꿈인 로또 당첨도 로또 구입이라는 최소한의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던가.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행운이라고 생각되는 상황보다 분명 행복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더 많다. 사소하고 소소한 순간, 일상적이고 별거 아닌 상황 속에서 행운은 요원하지만 행복은 매번 느끼고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운과 행복이 겹쳐지는 시점은 대부분 "여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중의 하나. 많은 이들의 로망이라는 스위스...
4천미터가 넘는 융프라우의 설봉에서 한국의 가을하늘 같은 푸른 창공을 마주한다는것은 뜻밖의 행운이다.
스위스 하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오른다.(물론 이건 시대적 감성이다.)
스위스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융프라우다.
융프라우 정상에서 한국말은 낯선 언어가 아니다. 어쩌면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보다 더 많이 들린다. 손에는 매콤하기로 유명한 사발면을 하나씩 들고 뜨거운 물을 사기 위한 행렬 속에 있다 보면 서울 근교의 유원지에 있는 착각마저 든다. 스위스 여행길을 인도한 가이드 말에 의하면 오늘 같은 융프라우의 본모습을 본 이들은 "행운아"라고 한다.
융프라우는 해발 4,518 미터 정상인지라 늘상 일기가 불순하고 눈과 바람과 구름이 겹쳐 흐르고 시야를 어지럽게 할 수밖에 없다. 전생에 선업을 몇 개 쌓아놓거나 나라를 구한 이들이 융프라우가 보여주는 제대로 된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했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그날의 우리 일행은 행운아들이었다. 그날 오전까지 불순했던 하늘의 상황이 우리가 융프라우요흐 전망대(3,454미터)에 당도하자 거짓말처럼 맑게 갰다.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그림엽서나 TV 화면을 통해서 보던 알프스의 풍광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티 없이 맑아진 하늘과 하얀 구름, 뾰족이 솟아오른 알프스의 예봉들과 그 속에 쌓인 만년설의 장광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인생사진이 되었다. 누군가 가족여행을 어디로 가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스위스라고 대답하는 이유도 그날 융프라우 정상에서 느꼈던 짜릿한행복 때문이다.(빙벽을 뚫고 산악열차를 만든 스위스인들의 신념과 기술력에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인터라켄에서 출발하는 융프라우 여행은 산악열차를 타고 알프스의 비경을 보여주며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지나고 보니 맑게 갠 융프라우의 진풍경을 보게 된 것은 어쩌다 마주친 행운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산악열차를 갈아타는 거의 하루가 소요되는 장도 끝에 얻게 된 뜻밖의 선물 같은 거 ᆢ다시 생각해보면 융프라우를 보기 위해 산악열차를 타고 만년설봉으로 향했지만, 올라가는 여정 내내 아름다운 풍광의 연속이었다.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하던지 감탄사의 연발이었고,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멋진 그림엽서가 완성되었다.
만약 융프라우 정상이 주는 특별한 감성에 취해 산기슭에 펼쳐진 천혜의 자연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면 그날의 기억은 어땠을까. 양 떼와 목동들, 그림 같은 집과 알프스의 대자연, 삼삼오오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 비경에 홀린 눈빛들을 그저 흘려보냈다면...
기다리고 설레이던 여행길에서 보게 된 멋진 풍광은 행운이었고 행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늘상 이런 스위스 여행 같은 여정을 즐길 수는 없는 법. 일상 속에서 여행의 감동과 설렘을 느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런 바람 또한 우리의 일상이 허락지 않는다. 여행과 일상을 구분하는 경계가 정확히 그런 감정이어서, 집과 학교나 직장을 오가는 환경에서는 역시나 기대하기 어렵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낙엽이나 클로버 코팅과 좋아하는 노래 녹음테이프를 선물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 당시 문방구에는 코팅 기구가 있어 꽤나 많은 이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친구에게 선물할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토끼풀이 흐드러지게 퍼져있는 군락 사이를 일일이 뒤집고 다녔다. 네잎 클로버 자체가 기형 혹은 변종인지라 이를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니까 네잎클로버를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반면 세잎클로버는 "행복"이 꽃말이다.)어쩌다 운 좋게 발견한 네잎 클로버를 코팅해 선물한 이들에게 어떤 행운이 함께 했는지는모른다. 행운은 개별적이면서도 은닉성을 갖기 때문이다.
어릴 적 집에서 토끼를 계속 키웠던 터라 먹이 준비는 늘 내 몫이었다. 토끼는 생각보다 훨씬 겁이 많고 민감한 동물인지라 먹이 자체도 조심해야 한다. 먹이에 조그마한 독성 있는 풀이 섞여있으면 바로 죽기 일쑤였다. 토끼가 좋아하는 풀 중 하나가 일명 토끼풀로 불리는 클로버다. 클로버는 들판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고 지천에 피고 자랐다. 그 줄기와 잎은 초식동물의 먹이로 하얀 꽃은 꽃시계와 꽃반지가 되어 아이들의 팔과 손가락에 묶여있었다.
네잎 클로버를 자연 속에서 발견할 확률은 1/10,000 정도라고 한다. 로또 확률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세잎들 사이에서 네잎을 찾기란 발품과 시간이 많이 소용되는 일이었다. 네잎클로버는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에 의하면. 갈리아 지방의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특별한 종교의식을 갖기 위해 채집했던 식물로서, 행운을 가져준다는 믿음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네잎 클로버 모양이 십자가 형태로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물로 여겨졌다는 스토리가 덧붙여져 있다.
네잎 클로버처럼 행운은 우리 삶 속의 변종에 속하는 뜻밖의 선물이다. 평범한 대부분의 일상 속에서 바란다고 주어지는 전리품은 아니다. 반면 세잎 클로버로 상징되는 행복은 살아가는 매 순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주위에 산재되어 있다. 소소하면서도 가치 없게 보이는 상황과 물건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다.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세잎클로버를 밟고 지나야 한다. 토끼를 위한 먹이로서 토끼풀은 세잎 네잎 불문하고 의미가 있지만. 네잎 클로버라는 행운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세잎클로버는 그냥 버림받거나 지나치는 존재가 된다. 실제 우리의 현실은 묘하게도 네잎 클로버 찾기와 닮아있다.
행운은 바랄 때 빛을 발하고 행복은 누릴 때 의미를 가진다. 계속 바라는 삶을 살기보다 누리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삶 자체가 빛나지 않을까.
네잎과 세잎 클로버의 교훈과 같이 행운을 찾기 위해 행복의 순간을 망각하거나 지나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