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밤에 불면이 배달되었다

by 지성파파

사십 대 후반의 후배와 대화하다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어렵다는 고등고시를 두 개나 합격한 수재가 무슨 걱정거리가 있을까 싶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정작 그 친구는 이유를 몰라서 결국 의사와 약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는 거다. 의사의 말을 빌자면, 노화과정 중 자연스러운 현상이 불면이라고 한다.


후배는 저녁을 먹고 식곤증이 심해지더니 피곤해서 잠을 자려고 하면 막상 잠이 들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격무에 시달릴 군번(?)은 아니어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아닌 걸로 보인다. 평소 술도 마시지 않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는 친구라 불면이 건강문제로 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속사정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후배 마음속 사정은 모를 일이다. 말 그대로 신체노화로 그런 건지, 본인도 잘 모르는 게 확실하다. 다만, 앞으로 불면의 밤은 계속될 거라는 나쁜 예감과 함께...


친구들 사이에서 나누는 대화중 가장 빈번한 것은 다가오는 정년과 퇴직 후의 삶에 관한 문제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들 중 금융회사에 다니는 이들은 현실적인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법적인 정년은 만 60 세지만. 만 55세 정도가 지나면 임금피크제가 시행되면서 실제로는 제 발로 나가라는 말과 같다고 한다. 결혼이 늦은 친구들 중에서는 60대가 되어도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다고 한다.(물론 야밤에 골프나 해외축구, 각종 유튜브에 정신이 팔려 자발적 불면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다.)


생애주기에서 중년은 대략 40세에서 60세 정도까지다. 40대인 후배도 그 범주에 들어가고 50대는 말할 것도 없다. 건강지수를 포함한 실제적인 중년의 범위는 어떨까. 육체적인 나이는 개인마다 달라서 누군가는 40대에 60대의 체력을 가진 이도 있을 테고. 다른 누군가는 50대이면서도 20~30대의 신체능력을 가진 이도 있을 텐데. 생각해보면, 중년의 범주는 대략적이지만 각 개인별로 다양한 구체성을 갖는다.


하지만 중년들의 고민은 다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설사 자신의 신체적 능력이 20년이 젊을지라도 전 생애에서 차지하는 현재의 위치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고민의 대부분은... 자신의 삶과 건강 문제, 가족의 건강과 미래의 문제, 아이들의 교육문제와 취업 문제, 부부 사이의 애정문제, 직업시장에서의 미래의 문제, 사랑과 영혼을 둘러싼 여러 문제 등등. 걱정거리들을 손꼽아 보면 한참을 헤아려야 할 정도로 많다. 사실 잠자리에 누워서 양을 셀게 아니라 고민거리들을 세봐도 잠이 잘 올 듯한데... 냉혹한 밤은 그렇지 못한가 보다. 근심 하나, 걱정 둘, 불안감 셋, 그러다 짜증 넷....


현실은 그랬다. 걱정 많은 중년들의 밤에 불면이 배달된 것이다. 결코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송 불가 딱지와 함께)



어떤 이름은 세상을 빛나게 하고
또 어떤 이름은 세상을 슬프게도 하네~~
우리가 살았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듯
세월은 그렇게 내 나이를 더해만 가네
한 때 밤잠을 설치며 한 사람을 사랑도 하고
삼백예순 하고도 다섯 밤을 그 사람만 생각했지
한데 오늘에서야 이런 나도 중년이 되고 보니
세월의 무심함에 갑자기 웃음이 나오더라

박상민 <중년> 중에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리되는 것도 많지만, 새롭게 등장한 고민거리도 많다. 대부분은 개인의 생애주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제아무리 사회적 성공을 이뤘다 할지라도 거쳐가야 할 관문은 피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숙명과도 같다. 박상민이 부른 <중년>의 노랫말처럼 세월의 무심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저 후배는(이 친구는 눈높이가 이상한 건지 아직 결혼의 관문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랑의 열병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은 얼마나 낭만적인가(이것은 십 대나 이십 대 때나 가능한 현실. 중년에게 낭만은 개뿔...).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아침은 얼마나 긴 시간이던가(이것 또한 하얀 밤에 관한 전설 같은 얘기고. 현실은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아침이겠지만...).


몹시도 비현실적인 바람은 바람일 뿐 우리의 현실은 지극히 시니컬한 상황만 존재한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의 농도가 짙어진다는 연구도 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의 문제일 것이다. 숙면의 시간이 생략되면 기다리는 것은 커피와 속 쓰림과 역류성 식도염의 위험뿐이다.


최근에 전보발령으로 업무가 바뀐 절친 또한 불면에 시달린다고 한다.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였던 친구가 최근에는 중간에 깨면 다시 잠 못 이룬다고 투덜거렸다. 역시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누구든지 업무나 가정 내외에서의 인간관계 때문에 새벽잠을 설칠 수 있어서이다. 새털 같은 근심 하나가 무거운 솜이불이 되어 습격하는 밤이랄까.


누군가는 잠 없는 밤에 김영하 작가처럼 소설을 쓰고, 다른 누군가는 김이나 작사가처럼 노래를 만들거나, 박준 시인처럼 시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상상 속의 창조물일 뿐 현실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면의 밤만 존재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피폐해진 육신과 영혼밖에 없다. 그렇다고 애써 철학자 코스프레까지 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철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숙면을 소망하고, 하얀 밤을 두려워하는 낭만 없는 시대 혹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우리는 불면을 반송하고 숙면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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