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시절은 지나갔다. 육신의 허기는 욕망의 대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가난한 시절의 추억 한토막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살아 움직인다. 풍화된 세상살이에 지친 배고픈 영혼들은 이제 그 과거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덩치가 큰 호박은 아무데서나 자란다. 재래 호박은 밭에 심지 않는다. 밭과 산이나 언덕의 경계, 밭의 둘레길에 씨를 뿌려놓으면 어느 날 언덕 전체를 덮는 호박넝쿨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거름에 섞인 호박씨로 인해 다른 작물들 사이에서 자라기도 한다. 인간의 발길이 뜸한 언덕배기에는 온갖 이름 없는 잡풀과 호박 줄기 사이에 소담스러운 호박이 자란다. 보통 잡풀들 사이에서 잘 자라는 농작물은 드문데. 호박만큼은 이런 법칙의 예외다. 잡초들의 질긴 방해와 회유에도 풍성한 넝쿨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생명력이 강하고 영양가 높은 먹거리 중 호박만 한 게 또 있을까. 어린아이 주먹 같았던 호박은 금방 아이의 얼굴이 되고 쉽게 들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호박이 자라는 걸 보고 있노라면 보이지 않던 비밀이 커나가는 자연의 섭리를 알게 된다.
호박죽을 쒀먹기 위해서는 늙은 호박이 필요하다. 다 자라지 않은 푸른 호박은 일찌감치 된장국이나 호박나물의 재료가 된다. 비와 바람의 시간을 지나고 가을이 되면 호박넝쿨 사이로 노란 호박이 본색을 드러낸다. 7~8 킬로그램 정도 되는 호박의 탐스러움은 인고의 시간 끝에 있다. 서리가 내리기 직전 늙은 호박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온다. 대청마루나 곡물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호박은 자신이 호박죽으로 변신할 날을 기다린다. 늙은 호박 한통이면 온 가족은 물론 인근의 몇 가족이 저녁을 배불리 먹곤 했다. 호박이 주는 풍부함과 건강함은 잘 익은 배추김치, 동치미와 더불어 인심을 돋아나게 했다.
추운 겨울 저녁이 오면 배고픔은 성급해진다. 흑백 티브이에서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의 노랫가락에 맞추어 숟가락 뜨는 소리와 소곤소곤하는 말소리의 화음은 육십 촉 백열전등 아래를 달콤하게 들뜨게 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모인 상에서 아이들은 그들끼리 모여서 먹었다. 어른들의 밥상에는 몇 가지 김치 외에도 잘 삭은 황시리 젓갈이 올라오기도 했다. 어른들은 손에 한 마리씩 들고 머리부터 베어 먹었다. 무슨 맛이었을까. 어린 마음은 비리고 곰삭은 맛을 짐작조차 못했다.
누군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면 다시 큼직한 면기에 담긴 몇 그릇이 추가되곤 했다. 더 달라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어머니는 눈치껏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그런 밤이면 언덕 위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울렸다. 문풍지를 거세게 두드리는 바람이 있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마당 가득 새하얀 빛 무더기가 쌓였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밥상 위에는 소복하게 정겨움이 더해지고 있었다.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죽 한 그릇을 먹다 보면 절로 경건해지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가난한 밥상에 이웃과 둘러앉아 배고픔을 죽으로 달래던 우리들의 겨울 풍경이었다. 근사한 배경음악은 없었지만 우리들 마음속에서는 멀리 교회 종소리가 메아리쳤고, 부지런한 숟가락 사이로 나눠지는 따뜻한 정이 있었다. 눈이 그친 밤. 졸려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이웃들 뒤로 뽀드득뽀드득 웃고 있는 달빛이 있었다. 마당 위 눈 속에는 그들이 두고 간 정이 박혀있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허기진 영혼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는 호박죽을 먹는다. 역시 달다. 쉬고 싶은 영혼들에게 언덕 위 종소리가 들린다.(친구의 호박죽)
저녁 식탁에 호박죽을 올리기 위해서는 꼬박 하루(또는 한나절)가 소요된다. 늙은 호박을 깎고 자르고 삶아 으깨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믹서로 호박을 갈아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 맛은 삶아서 으깬 호박에 비할바가 아니다. 음식의 맛은 현대화된 조리기구보다는 만드는 과정에서의 손맛이 증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과거의 부엌 속으로,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진 저녁 식탁으로 여행을 떠난다.
다시 호박죽이 그리워지는 겨울이 왔다. 도심 속에서는 호박넝쿨을 볼 수는 없지만, 마트나 시장에 가보면 어김없이 늙은 호박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농부의 손길을 지나 유통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호박을 다듬는 과정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숟가락이나 칼로 호박 껍질을 벗기고 크게 세분한 다음 속을 파낸다. 다음은 알맞은 크기로 잘게 자르고 삶는다. 가마솥이 사라진 주방에서는 압력솥에서 호박이 삶아진다. 호박이 익어가는 냄새는 달큼한 엿 냄새가 난다. 그 향에 이끌린 아이들이 왔다가 실망스레 총총히 사라진다. 중간중간 삶아지는 과정을 확인하다가 다 익었으면 이제 으깰 단계다. 고운체로 거르기도 하지만 약간 거칠게 부서진 모양도 좋다. 잘 삶아진 호박 조각은 대충 으깨도 호박즙 상태가 된다.
호박이 삶아지는 동안 호박죽에 들어갈 팥을 삶고 찹쌀가루나 밀가루를 준비한다. 노란 바탕에 적색의 팥과 하얀색의 찹쌀로 만든 새알심은 호박죽의 품격을 올려준다. 새알심 말고도 찹쌀가루나 밀가루를 거칠게 뭉쳐 뿌리듯이 넣으면 호박죽에 하얀 마블링이 눈꽃처럼 박힌다. 호박죽은 어떤 죽에서도 보지 못한 색색의 콜라보를 보게 된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수채화 한 폭같은.
달지만 밋밋한 호박죽을 팥과 찹쌀이 계미를 더해 준다. 눈꽃이 점점이 피어나고 팥에서 나오는 찐한 고소함까지 어우러지는 호박죽은 맛의 신세계를 제공한다. 한두 숟가락을 머금다 보면...다시 언덕 위에서 울려 퍼지는 정다운 종소리가 들려오고, 함께 죽을 먹었던 이웃들과 친구들이 찾아온다. 살아갈수록 가난해지는 영혼에 따뜻한 양식을 제공하는 호박죽 한 그릇. 비울수록 다시 채워지는 추억 속의 수프, 호박죽을 먹고 싶은 십이월이다.
문득, 지란지교를 다시 읽고 싶은 겨울 저녁.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카톡이 울린다. 이른 오후부터 팥죽과 호박죽 사이에서 고민하다 호박죽을 만들었다는 소식이다. 배속 깊은 곳에서부터 환영의 박수가 울린다. 친구가 만들어낸 호박죽은 어떤 사연을 들려줄까. 친구는 누구를 위하여 한나절 내내 수고스러운 일정을 지나왔을까. 깎고 삶고 으깨던 저 화음은 누구의 가난한 영혼을 덥혀줄 수프가 될까. 친구 집을 향해가는 길에 먼 옛날의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